변희재의 명과 암 (부제: 변희재의 주특기와 한계)

변희재에 대해 논평한다.

논객이자 미디어사업가인 변희재는 명암이 교차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변희재는 주특기와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변희재의 주특기는 이른바 ‘시비’를 잘 건다는 것, 그리과 잘 걸수 있다는 점이다. 변희재의 한계는 그가 전략적 사고와 통찰력에 한계점을 보인다는 것이다.

‘시비’에 대해서 중립적으로 평가하자면, 그 말 자체는 무색무취한 말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고 가린다는 것은 그 이유 여하와 정당성에 그 의미가 달린 것이다.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는 그 시비를 가리는 것이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다.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당해본 사람이라면, 그 옳고 그름을 가린다는 것이 무척 필요한 일이고 개인적, 사회적, 법률적 요구라는 것을 공감할 것이다.

그 시비를 따지는 일에서, 사안마다의 정당성이 부재하거나 그 무게감또는 근거가 약할 때, 그 ‘시비를 건다’는 말이 가지는 어감은 상당히 다르다. 통상 시쳇말로 ‘어떤 X이 시비를 건다’는 말이 있다. 말 같지도 않은 말을 가지고, 어거지로 떼를 쓰며 자신의 주장과 이익을 관철하고자 할 때 사회적으로 흔히 사용되는 표현이다.

변희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낱말이 바로 ‘전문 시비꾼’이다. 크고 작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크고 작은 ‘시비꺼리’를 가지고 끊임없이 싸운다. 그 과정에서 여기에 붙기도 하다가, 싸우고 갈라지고, 저기에 붙기도 했다가, 거기에서도 싸우고 갈라서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잡음’(노이즈)이 발생하기도 한다. 잡음이 없는 변희재는 일면 상상하기 어려운 그의 이미지이다.

시비를 거는 것은 누구라도 입이 있고 손가락이 있으면,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세련됨과 근거제시의 유무와 수준 차이가 다를 뿐이지, 살아가면서 인간은 누구나 시비를 따질 수 있고 따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변희재의 결정적 한계를 짚어보자. 그의 한계는 전략적 사고와 통찰력의 수준에서 나타난다. 설명하자면, 그는 한 개인이나 어느 조직의 사소한 이슈들에 대해서는 각종 시비를 잘 걸지만, 국가적으로(그리고 세계적으로) 매우 크고 중요한 이슈들에 대해서는 통찰의 깊이가 깊지 못하고 전략의 수준이 높지 못하다.

대표적인 사례를 누군가 요구한다면, 예를 들어 미국과 북한 간에,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났을 때를 전후해서, 변희재가 보인 분석과 해설은 ‘완전한 오판’이었다. 그 정도의 잘못된 분석이면, 정상적인 예의와 양심을 가진 논객이나 평론가라면, 자신의 잘못된 분석에 대해 그 전후사정을 설명하고, 수용자나 시청자, 독자들한테 깨끗하고 사과해야 했다.

자신의 잘못된 분석과 예측에 대해 승복하는 것이, 반드시 부끄럽거나 감추어야 할 수치는 아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본의 아니게 크고 작은 실수를 할 수는 있는 것이고, 특히 공인이라면 공적인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잘못이나 실수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특히 애국시민들이 그 정도의 실수나 오판마저도 수용 못할만큼 째째한 사람들은 아니다. 다들 나름대로 평생을 살아오면서 쌓아온 경험고 노하우가 있는 분들이다. 그분들의 인생경험이 변희재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그보다 적지가 않다.

전략은 통찰에서 나온다. 인간과 사회, 국가와 세계를 바라보면서, 그 움직임과 변화를 깊이 음미하면서, 통찰의 폭과 넓이가 반영되는 것이다. 그로부터,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목표에 도달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이 도출되는 것이다. 그 전략적 수단에 대한 달성도구로써, 각종 전술과 전술수단이 강구되는 것이다. 요컨대 변희재는 전문 시비꾼으로서 시비는 잘 걸지만, 통찰과 전략에는 약하다는 것이다.

그가 ‘자기편에 총질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 비판하는 사람들의 ‘인식의 한계’를 반영하는 비판이다. 자기편에 총질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편이라고 생각을 안하기 때문에 총질을 하는 것이다.

통찰과 전략적 사고를 하는 것은 후천적으로, 인위적으로 노력을 해서 대폭 향상시킬 수는 없는 분야이다. 선천적으로 천부적 재능을 타고 나는 측면이 있고, 후천적으로는 학습과 교육훈련을 통해 일정 정도나마 개발시킬 수 있는 여지는 있다.

변희재 추종세력은 그의 이러한 명암을 알고, 가능한 것은 기대와 예상을 하고 가능하지 않은 것은 기대와 요구를 하면 안된다. 왜냐하면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다. 특전사 구호에 ‘안되면 되게 하라’는 취지의 말이 있는 모양인데, 일반인들이 따라하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끝)

[애국뉴스 사설, 2020년 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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