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문재인의 눈빛, 인상, 그리고 가면

우리 ‘이니’. 아니, 너희들의 ‘이니’. 그의 눈빛, 인상, 그리고 가면에 대해 언급한다.

무엇보다도 문재인은 눈빛부터가 좋지 않다. 그가 정치적 레토릭(rhetoric)과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동원해서 입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지만, 그의 눈빛을 보면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고 왠지 모를 거짓과 사술(詐術)이 느껴진다. 그 사람의 말보다, 그 사람의 눈빛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문재인의 인상(人相)에 대해 말해보자. 언론에 보도되는 문재인의 모습은 깔끔하고 정갈하다는 이미지를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연설이나 발언이 언론 영상을 통해 보도되는 것을 보면, 정제(整齊)된 연출이 엿보인다.

필자가 문재인을 코앞에서 아주 가까이서 접한 것은 2번이었다. 모두 지난 대선 이전의 시점이다.

한번은 프레스센터 19층에서 기자회견이 있었을 때였다. 좁은 복도에 언론 취재진이 가득차 대기하고 있었을 때, 문재인은 옆방에서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복도에 나와서 언론에 공개적으로 얘기할 때와, 옆방에서 대기할 때 누군가와 얘기할 때는, 인상이 아주 달랐다.

두 번째는 대선 직전에 여의도 행사장이었다. 유력 대선주자였기 때문에 취재진이 엄청나게 몰렸는데, 필자도 카메라로 그의 움직임을 담았다. 나중에 귀가해서 영상을 다시 점검했을 때, 필자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문재인이는 공개석상에서 연설할 때는 점잖고 정제된 모습을 보이고, 실제 영상도 편집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깔끔한 이미지로 보도된다.

그러나, 필자가 촬영한 영상을 다시 돌려보니, 그가 누군가와 밀담(密談)을 나누고 입가에 웃음을 짓고 있었는데,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였다. 음흉(陰凶)한 웃음, 음흉한 인상, 그 자체였다. 그때 필자는 가슴에서 ‘서늘함’을 느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미디어라는 매체를 통해 한 인간을 제대로 파악한다는 것이 정말 제한적(制限的)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음흉하다: 겉으로는 부드러워 보이나 속으로는 엉큼하고 흉악하다/네이버사전)

문재인의 가면(假面) 뒤에 그의 본 모습이 무엇인지, 애국진영(愛國陣營)의 애국시민들은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끝)

[애국뉴스 사설] 2020년 5월 29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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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낙연 이미지와 인물평

이낙연에 대한 이미지(image)와 인물평(人物評)을 말한다.

인터넷 자료에 따르면, 이낙연(李洛淵, 52년생)은 기자 출신 정치인이다.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였고, 제16·17·18·19·21대 국회의원과 제37대 전라남도지사를 역임하였다. 문재인 정부에서 제 45대 국무총리를 지냈다.

2000년대 초반 전후 인터넷매체의 주가(株價)가 한창 상승하던 시기가 있었다. 새로운 매체로써 새로운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가던 시절이었다. 사회적으로 가능성을 인정받던 인터넷매체들의 대표 또는 경영자들의 모임이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있었는데, 이낙연도 그때 그 행사에 참석했다. 필자(筆者)도 지금과 매체명은 다르지만 ‘구멍가게 매체’를 하나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관심이 있어서 그 행사에 참관했다.

이낙연도 축사 또는 발언시간에 이런저런 얘기를 했지만, 그 발언요지는 이렇다. ‘인터넷매체들이 고개를 빼꼼히 들어 밖을 바라보는 형국’이라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당시는 새로운 매체인 인터넷매체의 영향력과 가능성, 한계 등에 많은 관심이 쏠리던 시기였다. 양적인 측면, 질적인 측면에서 많은 사회적 관심을 받았다. 오마이뉴스 오연호 사장도 ‘다소 어깨에 힘이 들어간 모습으로’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냈고, 프레시안이나 기타 신생매체, 자리를 잡아가는 언론매체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그때만 해도 일반대중들은 오마이뉴스가 그렇게 편향된 매체인줄은 몰랐을 시절이었다.

역사적 미디어, 전통적 미디어, 뉴 미디어 등 미디어에 대한 여러 가지 분류와 잣대가 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담아내는 ‘컨텐츠’이다. 오래전에는 돌(石)에다 정보를 새긴 적이 있었고, 나무나 종이에 정보가 담겨지기 시작했고, 전파 시대 이후에는 텔레비전을 통해 정보와 오락이 유통되고, 인터넷 시대에는 웹상으로 정보와 의견이 유통되었다.

유튜브 시대에는 인터넷과 영상이 결합되었고, 소셜미디어 시대가 도래하고 만개하면서, 컨텐츠의 폭발적 확산과 유통이 전개되었다. 중요한 것은 미디어와 컨텐츠와의 관계이다.

이낙연은 (전제조건: 만약에 정치세계에서 배후세력이라는 용어가 있다면) 그 배후세력이 활용하기 좋은 ‘얼굴마담’ 역할, ‘꼭두각시’ 역할에 적임인 인물이다.

일면 부드러운 화법과 처신에 점잖게 말을 하는 것도 같지만, 그 핵심에서 소신과 강단이 없어 보이는 인물이다. 원래 대학 운동권이 활발한 학교에서는 총학생회장에 얼굴마담, 꼭두각시 역할을 하는 ‘좀 모자란 인물’을 내세우는 일이 다반사(茶飯事)이다. (예삿일이고 흔한 일이라는 말) 꼭두각시 뒤에서 실세(實勢)들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들이 챙길 것은 챙기고…

필자에게 있어서 이낙연의 이미지는 ‘고무줄이 축 늘어진 어느 촌로(村老)의 팬티’이다. 그의 인물평을 말하자면, ‘맹물 같은 양반’이다. (끝)

[애국뉴스 사설] 2020년 5월 27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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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 이유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어떠한 사회현상의 원인을 생각해 볼 때, 미시적(micro, 微視的) 접근방법과 거시적(macro, 巨視的) 접근방법을 사용해 볼 수 있다. 탄핵 사유에 대해서 본 지면에서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이루어진 탄핵 이유 분석 중에서 가장 거시적인 접근을 취해보고자 한다. 즉, 가장 ‘큰 틀’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서원(최순실) 때문에 탄핵(彈劾)이 되었는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돈 문제 때문에 탄핵이 되었는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특별한 개인비리가 있어서 탄핵이 되었는가? 아니다. 그럼 박근혜 대통령은 무엇 때문에 탄핵이 되었는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추진된 것은 대한민국 적성세력과 체제전복세력에게 특정 시기에 국내외 정치적 환경에 대한 상황 변화 가능성이 제기될 때 박 대통령의 존재 자체가 그들에게 치명적 위협이 될 가능성 때문이었다.

북핵문제 해결을 둘러싸고 대북군사옵션도 마다 하지 않을 인물로 보였던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다면, 그리고 한국에서 대북문제에 대해 원칙과 소신을 가지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과 대북무력사용 문제에 대해 의견이 합쳐진다면, 그것은 대한민국 적성세력과 체제전복세력에게는 자신들의 사활(死活)이 걸린 치명적인 위협요소였다.

‘모든 전후사정의 정황을 고려하면’, 트럼프는 한때 실제로 ‘대북무력사용’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국민들은 당시에 이를 몰랐겠지만, 그의 이러한 결심과 의사결정은 대한민국 최고 권부(權府)에도 전달이 되었을 것이다. 대북군사옵션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동맹국 정부의 전폭적인 이해와 협조,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시점에서야 대북무력사용 또는 대북군사옵션이라는 것이 시쳇말로 ‘나가리’가 되었지만, 한때의 특정시점에서는 실제로 일시적이나마 결정이 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후 (북한과 그 추종세력, 협력세력이 대북공격을 피하고자) 표면적으로는 미북 간에 ‘회담 국면’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에, 그 결정은 유보되었고 이후 폐기되었지만 돌이켜보면, 사실상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역사적인 ‘마지막 기회’를 놓친 것이었다.

(나가리의 사전적 의미: 1. 화투에서 이긴 사람이 없어 판이 무산된 것을 이르는 말 / 2. 계획이나 약속이 깨지거나 중단되어 무산되었을 때를 속되게 이르는 말(네이버 사전, 이하 동일))

북핵과 ICBM 문제가 지금은 표면적으로 사그러든 것 같아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아무 것도 해결된 것이 없기 때문에 장차 이 문제가 다시 불거지는 것은 ‘시간문제(時間問題)’이다. 그때는 해결이 어려운 국면이 될 것이다. 이것은 미국 정보기관의 전략가들이나, 일본의 전략가들이나, 중국의 전략가들이나, 북한의 전략가들이나, 본지(本紙)를 비롯해서 한국의 최고 수준의 전략가(戰略家)들이라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의 치명적인 약점이 전략가의 분석과 예측이 정책에 반드시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점이다. 전략가의 분석과 정치인의 이익이 항상 일치되고 부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략가는 국가전체의 이익에서 관점을 접근시키는 것이고, 정치인은 그가 역사에 남을 ‘큰 정치인’이 아니라면, 자기의 이익(私益)을 공익(公益)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그런 부류의 정치인이다.

미국도 장점이 엄청나게 많고 힘이 엄청나게 큰 국가이지만, 자체적으로 치명적인 약점(弱點)도 가지고 있다. 정치권력을 담당한 행정부가 주기적으로 교체되고, 국제관계에 대한 정책의 일관성이 항상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정치인이 대중들을 대상으로 포퓰리즘적인 ‘미봉책(彌縫策)’에 머무르는 경우, 정책목포 달성이 어려운 대상들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 추진이 어려운 형편이다. (미봉책의 사전적인 의미는 눈가림만 하는 일시적인 계책(計策)을 말한다)

미북 간의 1차 회담인 ‘싱가포르 회담’은 실질적으로 ‘사기(詐欺) 회담’이었고, 트럼프가 김정은과 종북세력의 ‘함정(陷穽)’에 빠진 것이었다. (함정의 사전적 의미: 짐승 따위를 잡기 위하여 땅바닥에 구덩이를 파고 그 위에 약한 너스레를 쳐서 위장한 구덩이) 이른바 ‘톱다운(top-down)’ 방식이라는 용어도, 트럼프를 그 참모와 조언그룹으로부터 분리해내고 고립시키려는 치밀하고 교활하게 고안된 고도의(한편으로는 허술하고 허접한) 심리적 공작(operation) 용어였다.

미북 간의 1차 회담인 싱가포르 회담은 가히 항우와 유방의 역사적인 만남이었던 ‘홍문연(鴻門宴)’의 만남에 비길 만 하다. 역사적으로 그런 평가가 나올 만도 하다. 중국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회견이 바로 홍문연의 회견이라고 회자된다.

2차 회담인 ‘하노이 회담’은 처음부터 실질적으로 의미가 거의 없는 회담이었고, 1차 싱가포르 회담의 실패에 대한 미국측의 ‘엑시트 전략(exit strategy)’ 차원의 형식적이고 요식적인 회담이었다. 1차 회담이 함정에 빠져 실패했기 때문에, 미국 의회에서 청문회를 개최해서 담당자를 소환해서 회담 전후 경과와 책임 소재를 따져 물을 경우, 폼페이오를 비롯해서 책임자들이 줄줄이 불려가 문책과 망신의 대상이 될 처지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김정은과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진의’를 최종적으로 확인해보는 것도 포함된 것이었다. 그러나 김정은은 애초부터 비핵화의 의지가 없었기 때문에, 그 진의에 대한 확인은 시쳇말로 ‘확인사살(確認射殺)’에 불과한 것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 이유는 최서원(최순실) 때문이 아니라, 북한의 생존과 적화통일을 위한 것이었다. 그것을 위해서 어떠한 수단과 방법, 조작과 선전을 통해서라도 박근혜는 ‘반드시 제거되어야’ 하는 대상이었다. (끝)

[애국뉴스 사설] 2020년 5월 26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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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신군부 세력의 한계

신군부(新軍部) 세력의 한계점에 대해 논평한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신군부 세력의 족적은 상당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군사전문가’라는 단어와 ‘안보전문가’라는 단어를 혼용해서 쓰고 있는데, 엄밀히 말해서 두 단어의 의미와 내포범위는 다르다.

국가안보는 포괄적인 범위의 단어로써 군사적, 비군사적 영역을 모두 담고 있다. 군사분야는 국가안보의 하위영역으로써, 글자그대로 주로 군사방면의 영역을 다루고 있다. 물론 군대에서도 유형의 전투력 뿐만 아니라 무형의 ‘정신전력’ 측면도 존재하고 강조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군사분야의 연관성 내에서 언급되는 측면이 있다. 그것은 ‘비군사적 분야의 정신전력’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자 용어이다. 단어의 구별이 필요하다.

군사전문가는 안보전문가가 아닐 수도 있고, 안보전문가는 군사전문가가 아닐 수도 있다. 이 말이 가지는 중요한 의미는 이렇다. 국가안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군사적 영역 뿐만 아니라 비군사적 영역도 매우 중요한 분야이다. 나라와 체제를 지키는 것은 군대 뿐만 아니라, 민간 영역, 정신전력 영역, 문화예술 영역, 사회언론 영역, 안보전략 기획관리, 민간 외교, 동맹관계의 비군사적 영역, 국제관계에서의 우방 관리 등 분야에서 다양한 기획관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동안의 국가 방위 정책과 실제 집행현장에서는, 국가안보책임자들이 주로 군사 분야의 군사력 건설과 운용에만 치중한 측면이 크다. 그래서 국가안보의 비군사적 영역들에 대한 이해와 투자가 크게 부족했다. 어쩌면 큰 신경을 쓰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전두환을 필두로 한 신군부 세력이 크게 부족했던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그 좋은 세월’을 뒤로 하고, 인생 늘그막에 ‘동네북’이 되어 갖은 수모와 곤욕을 치르는 신군부 출신 인사들을 보면, 그들이 현직에 있을 때, 요직에 있을 때, 이러한 비군사적 분야의 국가안보 개념에 대해 좀 더 그 의미와 파괴력을 이해했다면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는 가정과 추론을 해본다. 오늘날의 국가사회 모습도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요컨대, 국가안보라는 것이 군대만 가지고 되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당연히 군대라는 강한 물리력으로 국가와 체제를 지켜내는 것이지만, 군대 말고도 정치, 언론, 문화, 예술, 영화, 음악, 사회단체, 법률, 국제관계, 동맹관계,공작(사회분야), 선전선동, 체제수호 활동자금의 조성과 배분, 적정(敵情) 파악, 체제전복 및 사회불안 세력의 분열 및 약화 유도, IT 기술과 컨텐츠의 융합, 컨텐츠 산업의 중요성과 국가안보에의 활용 등 타분야에서도 국가안보에 엄청나게 중요한 요소들이 있다.

신군부 인사들이 현직에 있을 때, 이러한 비군사적 측면의 국가안보 활동의 중요성을 알았거나 깨우쳤다면, 지금처럼 국가가 이렇게까지 뿌리가 흔들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측면에서는 그들이 국가를 수호하고 권력을 누린 부분이 있었지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측면에서는 불순세력이 국가의 기둥 밑둥을 좀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오랜 세월 축적되어 드디어 조금만 더 일이 진행이 되면, 집안 건물 자체가 무너질 판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안보가 흔들리고 심지어 위태롭게 된 것은 그동안 국가안보를 군사전문가들이 중책을 맡아 직무를 수행했지만, 그들이 비록 군사전문가였다 하더라도 안보전문가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끝)

[애국뉴스 사설] 2020년 5월 25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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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면, 무슨 내용을 담고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다큐멘터리는 영화 장르의 일종으로 다큐 영화로도 불리운다. 현실을 창조적으로 처리하여 만든 것인데, 픽션이 아니라 넌픽션을 기반으로 한다. 다큐로 유명한 해외 방송사는 영국의 BBC, 미국의 PBS, 일본의 NHK 등이 있다.

보수우파의 유튜브 방송을 한다는 사람들도, 사실 제대로 된 방송으로 사회적으로, 객관적으로 인정받으려면, 제대로 된 다큐 정도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보수쪽에 그런 유튜브 방송 채널이 ‘단 한군데라도’ 있는가?

자극적이고 편향적인 내용으로 구독자를 확보하여 자기 시청자층을 만족시킬지는 몰라도, 사회적으로 폭넓게 임팩트를 주는데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보수우파 유튜브 방송 채널들의 명확한 한계지점이다.

죄없는 박근혜 대통령이 ‘억울하게 탄핵당했다’고 발발 동동 구를 것이 아니라, 무엇이라도 명확한 타겟을 가지고 화살이라도 제대로 쏘아보고 야구 타석에서 시원하게 방망이라도 휘둘러보고 삼진아웃 당하면 그거라도 이해하겠는데, 보수니 우파니 하는 사람들은 자기들 지지층과 얼마간의 집회나 시위에만 머물러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제대로 된 박근혜 탄핵 다큐’는 없었지만, 가상으로 만약 박근혜 다큐를 만든다면, 어떤 목차로 어떤 내용을 담아볼 수 있을까? 상상해 본다.

제1부: 박근혜 탄핵 사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전후를 조명한다. 탄핵을 찬성하는 자, 탄핵을 반대하는 자, 양쪽 모두를 비추고 다룬다. 왜 탄핵을 해야 하고, 왜 탄핵을 하면 안되는지, 양쪽의 주장을 모두 들어본다. 타임라인을 따라서 탄핵이 추진되고 이루어진 과정을 담담하게 따라간다. 탄핵 사태의 처음과 끝까지 일정한 긴장감을 가지고, 영상 문법에 따라 한국정치와 사회를 엄청난 회오리 바람으로 몰아넣은 대통령 탄핵 사태의 전체 과정을 조명한다.

제2부: 박근혜 일생 조명

챕터(chapter)를 바꾸어, 이번에는 인간 박근혜의 일생을 조명해 본다. 태어나서 성장하고 학교를 다니며 성인이 되고 청와대에서의 일상을 다루고 대통령 아버지의 빛과 그림자도 조명하며 정치에 입문했던 과정도 살피고 마침내 대통령이 되는 과정도 살펴보고 드디어 탄핵 직전까지의 대통령으로서의 활동 모습을 담담하게 담아낸다.

제3부: 탄핵 직전의 국제정세 전개와 국내정치 상황

이번에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직전의 국제정세 전개와 국내정치 상황을 살펴본다. 특히 미국의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주목받고 있던 트럼프 당시 주자의 등장과 미국내 돌풍 이유에 대해서 짚어본다. 그리고 만약 트럼프가 대선에서 당선될 경우, 그의 한반도 정책, 특히 북핵문제 해결과 대북정책 선회의 가능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아울러 이와 맞물려 국내정치 상황의 흐름과 예상을 되짚어 본다. 당시 대통령으로 권좌에 앉아있던 사람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적성세력과 체제전복세력, 친북세력, 종북세력, 반헌법세력, 반대통령세력, 반대한민국세력 등의 진영에게 밀어닥친 긴장감과 우려를 조명한다. ‘트럼프와 박근혜라는 조합의 등장 가능성’에 대한 우려이다.

제4부: 당시 소위 보수우파의 탄핵 반대 활동 조명

탄핵 사태 당시 활동했던 이른바 보수우파 진영의 활동을 되짚어 본다. 어떤 식의 반대 활동과 반대의 목소리, 반대의 논리, 반대의 방법 등이 사용되었는지 반추해 본다. 과연 그러한 형태의 활동이 당시로서는 최선이었는지, 아니면 전략적 실패였는지 돌아본다. 당시에 활동했던 주요 인사들의 인터뷰도 담아내고, 그에 대한 비판의견도 들어본다.

제5부: 탄핵의 논리 검증 및 조명

탄핵 사태 당시에 사용되었던 탄핵 찬성측의 법적, 정치적 논리를 검증한다. 탄핵의 정당성 주장에 이용되었던 법적 논리와 근거, 증거, 증명 등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해부한다. 과연 그것이 법적으로 가능한 논리였는지 점검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밝혀진 새로운 사실들도 조명한다. 헌법재판소를 비롯한 관련 기관들의 입장과 행태도 주목한다. 결국 탄핵의 논리가 정당한 것이었는가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제기한다.

제6부: 대한민국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

대한민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조명한다. 탄핵 사태가 단순히 1~2년에 국한된 사태가 아니라, 사실 따지고 보면 그 흐름과 뿌리가 대단히 오래된 현상이라는 것을 주목한다.

구한말 시기부터 식민지 시대, 2차대전, 해방, 좌우익 대립, 6.25, 냉전 대립, 군부 집권, 민주화 세력, 친북종북세력의 발호, 문화전쟁의 패배, 언론환경의 극단적 악화, 시민사회 주도권 상실, 전통적 한미관계의 질적인 변화, 드디어 북핵 보유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보수우파 세력의 지리멸렬, 애국진영의 부진 등을 총체적으로 다룬다.

그 일련의 흐름 속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의 ‘역사적 의미’를 짚어본다. 그리고 묻는다.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주인의 한사람인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끝)

[애국뉴스 사설] 2020년 5월 22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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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제는 애국진영도 세계적인 싱크탱크를 키워야 할 때

이제는 애국진영도 세계적인 싱크탱크를 키워내야 할 때이다.

이른바 애국진영은 크고 작은 문제가 있는데, 그 고질병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산이 아닌가 보다’ 현상이다. 목표와 전략을 임의대로 설정하고 일을 추진했는데, 막상 결과라는 뚜껑을 열어보면 낭패인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시간과 노력이 물거품으로 확인되는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현상이다.

이제는 과거의 시행착오을 뒤로 하고, 지금부터는 속도 보다는 방향을 중요시 해야 한다. 잘못된 방향으로 아무리 입에 단내 나도록 뛰어봐야, 결코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 점을 애국진영은 처절하도록 각성해야 한다.

우리가 어떠한 문제점의 원인이나 해결책을 생각해 볼 때가 있다. 사회적 문제나 갈등의 원인을 분석해서, 대안이나 정책을 수립 및 집행할 수도 있다. 여기에서 일반적으로는 우리들의 ‘직관’이 상당부분 작용하고 결과적으로 그 직관이 타당한 경우도 매우 많다.

그러나 어떤 문제나 사안에서 우리들의 직관이 작용했는데, 나중에 시간이 흘러 모든 각도에서 그 문제의 원인과 과정을 분석하고 검토해보면 그 직관이 틀린 경우도 있다. 사안의 본질이 직관과는 다르게 다른 곳에 문제의 소재나 해결책이 있었던 것이다.

세계적 흐름을 주도하는 선진국들은 싱크탱크 활동에 많은 투자와 지원을 하고 있다. 역사적 경험을 통해 연구개발(reseach & development)에 투자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시행착오를 줄이고 정책목표, 사회적 목표에 도달하는데 매우 경제적이라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길을 갈 때는 지도나 내비게이션을 참조하는 것처럼, 미지의 사회목표를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 과정에 대해 사전에 검토하고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긴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의 선진국들이라고 해서 과거에 시행착오가 전혀 없었겠는가? 반드시 있었을 것이다. 인간과 사회는 과거의 실수와 잘못을 딛고 일어서서, 앞으로,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다.

애국진영도 그동안 수많은 군자금을 ‘엉뚱한 곳’에 탕진하거나 낭비해왔다. 애국시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주거나, 곳곳에서 나라를 구하는데 써달라며 애국성금을 보내주었지만, ‘깃발든 자들’이 엉뚱한 산으로 올라갔거나 아예 자기 주머니에 전부 착복만 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인 마이 포켓(in my pocket)!

애국진영의 노장청이 힘을 합친다면, 충분히 세계적인 수준의 싱크탱크가 가능하다. 노년, 장년, 청년이 자기들의 장점과 주특기를 발휘하고, 서로의 빈곳을 채워준다면 지금이라도 세계 정상급의 싱크탱크는 출범할 수가 있다.

노년 인사들의 경우는 그 동안의 인생경험과 경륜, 휴먼 네트워크, 사회적 신뢰자본 등을 동원할 수 있다. 장년 인사들의 경우는 컨텐츠 기획, 생산, 유통 등을 설계할 수 있고, 각종 전략전술 입안과 집행 등을 도맡아서 진행할 수 있는 능력과 경험이 있다.

청년 인사들의 경우 젊은 에너지를 바탕으로 각종 SNS 활동 기획과 추진을 맡아볼 수도 있고, 새로운 시각과 신선한 정보를 젊은 세대들에게 확산 및 유통시킬 수 있는 재주가 있을 것이다.

위의 사례는 일부를 제시한 것이지, 위의 분야에만 국한되는 활동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국제사회의 싱크탱크 산업은 미국이 주도하는데, 영국이나 일본의 싱크탱크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미국의 브루킹스 연구소나 헤리티지 재단, AEI 등을 필두로 엄청나게 많고 다양한 싱크탱크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 정책분석 분야에서는 브루킹스 연구소나 헤리티지 재단의 경우에도 허점이 많고 깊이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깊지는 못하다. 거기에는 그럴 수 밖에 없는 구조적, 현실적 한계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소위 보수우파에서도 그동안 그 무슨 연구소라는 ‘간판’이 걸린데가 있었는데, 명실상부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싱크탱크 산업과 활동의 핵심 중의 핵심은 바로 ‘인적자원’인데, 직간접적으로 관여된 사람들의 수준과 깊이가 그 이름에 걸맞는 것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출연 연구소들은 한국적 풍토에 비추어서, 정권의 향배에 따라 그 연구결과나 방향이 ‘춤을 추는 경우’도 많다. 민간영역의 연구소들은 자본의 논리와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다. 재야에서는 일부 역량있는 인사들이 있었지만, 큰틀에서 세계적인 싱크탱크를 출범시키기에는 이해도 부족했고 능력도 부족했다.

이제는 애국진영도 R&D의 중요성을 느껴야 한다. 연구개발이나 전략전술의 수립 없이, 아무 산이나 마구 오르는 폐해를 완전히 없애 버려야 한다.

삼삼오오 뜻이 맞는 사람들이 가까운 동네 야산을 운동삼아 오르는 것쯤이야, 잘못된 방향으로 가더라도 이내 되돌아 올 수 있다. 그러나 수만 이상, 수십만 이상의 대병력을 지휘하는 장수라면, 반드시 대군을 움직이기 전에 생각해야 한다. 어떠한 전략적 목표 아래 어떠한 전술적 운용을 할 것인지, 반드시 ‘군대를 움직이기 전에’ 검토해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의 애국진영은 장수도 문제가 있었고, 병졸들도 문제가 있었다. 장졸 모두 각성하고 분발해야 한다. 시쳇말로, 또는 우스개말로 ‘당나라 군대’라는 단어가 연상되는 보수우파 진영이었다.

(물론 애국진영과 보수우파진영은 그 범위의 크기가 다른 어휘이자 집단이다. 보수우파진영은 애국진영의 부분집합이며, 애국진영은 보수우파진영의 전체집합이다.)

앞으로는 ‘나를 따르라!’ 라고 해놓고는, ‘이 산이 아닌가 보다!’ 라고 하는 행태와 시행착오는 애국진영에서 없어져야 한다. 그것은 세계적인 싱크탱크 출범과 육성이 필요한 명확한 이유이다. (끝)

[애국뉴스 사설] 2020년 5월 22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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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반도 정세 분석과 일본어

한반도 정세 파악과 이해를 위해서 애국진영과 본 정보와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그것은 한반도 정세와 일본어의 관계에 대한 관찰과 경험이다. 애국진영에서 참조하길 바란다.

한반도 정세에 관해서 분석과 논평을 하는 개인과 기관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품질을 확보한 개인과 기관들도 있다. ‘랭킹(ranking)’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기질이나, 랭킹을 매기는 것을 좋아하는 한국의 풍토를 반영하여, 다른 사설에서는 한반도 정세 분석에 관한 랭킹도 매겨보기로 한다. 금일에는 애국진영, 한반도 정세, 그리고 일본어에 관해서만 살펴본다.

한반도 정세의 파악과 분석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데이터가 활용될 수 있고 활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그러한 수집되고 축적된 데이터를 어떻게 분석하고 이해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그러한 분석을 가지고 정책수립과 집행에 반영한다든가, 법률과 제도 수립에 활용한다든가, 개인과 조직이 각자의 행동과 진로에 대한 의사결정에 활용하는 등의 분석 수요(analysis demand)가 존재할 것이다.

‘눈뜬 장님’ 얘기부터 해보자. 한국에는 눈뜬 장님들이 많다. 자기들이 한국에 대해 잘 알아서, 한국의 정치상황이나 시국상황에 대해 이러저리 떠드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의 인식의 출처, 인식의 근원을 따라가보면 주로 대중매체에서 획득한 정보나 뉴스일 때가 많고, 또는 다른 이들로부터와의 접촉이나 교류를 통해서 획득한 자료나 의견일 때가 비일비재하다.

권력을 가진 자나, 또는 권력을 추구하고 획득하려는 자들은 대중언론매체나 대중문화매체를 그냥 두지 않거나 그냥 두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대중매체들은 ‘권력의 기반’이거나 ‘권력창출의 기반’, 또는 ‘권력유지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중요한 기반이기 때문에, ‘권력 의지’가 비교적으로, 상대적으로 강한 자들은 그러한 대중매체를 활용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심지어는 ‘조작’하려고 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만약에 대중들이 정보를 입수하는 그러한 언론매체들이 권력의지를 나쁜 자들에 의하여 오염된 경우에는 그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더욱이 대중들이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대중매체의 컨텐츠를 소비하는 경우에는? 오염된 식재료를 활용한 음식을 섭취하는 경우에는 배탈이 나거나 몸에 이상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잘못된 오염된 정보를 지속적으로 소비하는 경우에도, 대중들의 정신과 판단에 탈이 나거나 이상을 일으킬 수 있는 이치이다.

한국에는 ‘정보 식중독’, ‘뉴스 식중독’에 걸린 대중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기가 식중독에 걸린지도 모르고, 계속 잘못된 뉴스와 정보를 소비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른바, 보수니, 우파니, 애국진영이니 하는 주위에는 ‘저 잘난 맛에’ 이리저리 자신의 정치논평과 시국견해를 거침없이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간접적으로 주입되거나 학습된 내용들을 단편적으로 ‘재유통’ 하는 경우에 그친다. 오리저널 컨텐츠가 비교적 드물다.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언급한다. 정말 신기한 것은 한국 내에서도 잘못된 정보와 분석을 가지고 잘못된 이해와 판단을 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어떻게 ‘바다 건너에서’ (비교적) 정확하게 한반도 정세를 이해하고 분석하는지 정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일본이라는 나라, 일본인이라는 사람들에 대해서 한국인들의 정말 그들의 실력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특히 일본 지식인들은 수준이 다르다. 대중매체에서 활약하는 일본 논평가/비평가들의 의견과 분석을 보면, 가끔씩 무릅을 치고 탄복할 만한 내용이 나오곤 한다. 한국의 대중매체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내용이다. 정말 깊이가 있고 핵심을 찌르는 분석과 이해이다. 저절로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는 탁월한 견해이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일본 논평가들의 수준이 저 정도라면, 눈에 보이지 않게 활동하는 ‘일본의 분석가’, 특히 ‘일본의 전략가’들은 어느 정도일까 심히 궁금해지기도 한다. 우리는 일본의 분석가들과 전략가들이 누군인지, 어디에서 일하는지, 어디에서 사는지 등에 대해 그들의 정보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이 무엇을 먹고, 어디에서 자고, 어디에서 일하며, 누구를 만나고,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도리가 없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들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그들은 지금 일본 내부나 외부에서 지금도 차분하면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을 것이다.

애국진영의 지도급 인사라면, 특히 그들이 한반도 정세에 관해 정확한 이해와 심도있는 분석을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일본어를 공부해야 한다’.

일본어를 공부해야 한다? 내 인생 늘그막에 무슨 말인가 반문할 수도 있지만,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은 끝없는 ‘인생 마라톤’과 같다. 벼락치기로 안되는 것이 외국어 공부이다. 평소 꾸준하면서도, 끝없는 노력을 기울일 때, 오랜 시간, 심지어 오랜 세월이 흘렀을 때, ‘어느 정도나마’ 감을 잡을 수 있는 것이 외국어 학습의 특성이다. 왜냐하면 남의 나라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영어는 어떻하고? 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다. 오늘날 영어는 글로벌 언어이기 때문에 당연히 공부해야 한다. 필자도 대학에서 영어를 심도있게 공부한 사람으로서 30년 이상을 영어학습에 노출되거나 영어환경에 노출된 경험을 가진 사람이다. 고등학교 때는 독일어를 공부하고, 대학 때는 프랑스어까지도 수강해보고 접해본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일본어를 배워야 된다!’라고 ‘강하게’ 주장할 때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긴 얘기를 짧은 지면에 다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핵심만 요약에서 말하자면, 그만큼 한반도 정세의 이해와 분석에 관한 양질의 고급자료가 일본어로 생산되고 표현되며 유통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자료나 영어자료만 참고하는 사람들은 절대 접할 수가 없는 자료들이다. 그래서 일본어를 배워야 하는 것이다.

요즘에는 이름있는 검색엔진의 번역기술이 과거와는 차원이 다르게 발전했기 때문에, 첨단 기술을 이용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도움을 받을 수가 있다. 그러나 역시 자신이 직접적으로 이해하는 것만큼은 따라올 수가 없을 것이다.

일본의 지식인들, 전략가들, 분석가들, 논평가들은 한국의 이름뿐인 소위 ‘전문가들’과는 차원과 격이 다르다. 그들의 시각과 분석을 우리가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정말 일본이라는 나라의 깊이와 넓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중국마저도 한국은 만만하게 보고 무시하지만, 일본을 상대로는 절대로 만만하게 보지 않고 심지어 두려워 하기까지도 한다.

2차대전 당시 미국과 한판 제대로 붙어본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당시 조선(한국)에서 어지러운 시국에 지저분한 골목에서 지저분한 몰골로 한국인들이 방황하고 있을 때, 일본은 항공모함 함대를 이끌고 여기저기 다니며 글로벌패권 추구를 시도한 국가이다.

그것도 오늘날이 이야기가 아니라, 책 속에 영화 속에 나오는 예전의 이야기이고 과거의 역사이다. 우리는 예전에도 뒤쳐졌고 현재도 밀리고 있다. 이것을 자각하고 반성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미래에도 뒤쳐져 있을 것이다.

그 뒤쳐짐의 결과는 아마도 방황과 고통일 것이다. (끝)

[애국뉴스 사설] 2020년 5월 21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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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춘근의 한계

이춘근의 한계에 대해서 살펴본다. 이춘근의 한계점을 논하자면, 일반적으로 교수 출신이나 학자 출신 인사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될 수 있는 특징이면서도, 이춘근 개인적으로도 그 한계점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개별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이춘근은 보수진영 내에서 그마다 국제문제, 또는 시사문제에 대해서 학문적 이론의 틀을 가지고 설명한다는데, (비교적으로 말해서) 그 존재의의가 적지 않다. 이른바 보수니, 우파니 하는 깃발을 내세우면서, 유튜브나 길거리에서 자기 목소리만 높이고, 그 근거제시가 척박하거나 그 세련도가 떨어지는 논객 또는 개인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춘근은 박사이면서 교수 출신답게, 그나마 체계화된 학문적 이론의 근거와 배경을 설명하기에, 적어도 그 점에서만큼은 다른 조잡한 인사들과는 차별화된 점이기도 하다. 소위 보수진영에 아무 내용도 없이, 목소리만 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무식한 사람들의 일반적 특징이, 자기가 무식한 줄 모른다는 점이다.

그런 이춘근이지만, 바로 그 점은 이춘근의 한계점과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이춘근의 결정적 한계는 바로 학문적 이론의 근거 또는 체계를 뛰어넘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참으로 복잡다단하다. 글로벌 시대인 오늘날의 국제환경은 정말로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인종들, 다양한 문화들이 서로 교류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고립된 채, 각자의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학문적 이론의 가치는 우리가 그러한 복잡한 세상과 국제정세를 파악함에 있어서, 일정 정도의 ‘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한 것이다. 우리가 세계를 관찰하는 어떠한 창(window)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과거의 수많은 출중한 학문적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관찰과 고민을 간접적으로 흡수하는데 있어서, 학문적 수련과 연마의 과정만큼 그것을 집약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방법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제도권 교육, 정형화된 학문과정의 코스는 단점도 적지 않지만은, 장점도 무척 크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학문적 후속세대에서 인류문명과 선배세대의 축적된 업적을 효과적으로, 효율적으로, 압축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문적 과정의 의미와 중요성은 그 무게감이 결코 작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과거에 일어난 현상이 반드시 오늘날의 현상을 설명하는데, 미래에 일어날 현상을 예측하는데, 항상 타당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의 이론이 오늘날의 사건을 설명하지 못할 수 있고, 미래에 일어날 현상에 대해 효용성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사회과학이나 정치학 분야는 자연과학이나 기술분야와는 그 성격과 원리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정치학이나 사회과학 분야의 학문적 분야로서 성격도 그럴진데, 현실 정치나 현실의 국제정치는 대단히 변화무쌍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예측불가성이 항상 내재되어 있다. 그것은 인간 개인들과 그들의 집합체인 사회 전체가, 합리적인 과학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이성과 감성의 조합’인 인간들의 세계를 다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춘근의 글이나 논평, 분석을 일부라도 접해보면, 그 사람은 자기가 이때까지 접해온 분석의 틀, 이론의 틀에 ‘갖혀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이 정도로 얘기해서 말귀를 알아듣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감이 잘 안잡히고, 뜬구름 잡는 듯이 들리는 사람도 있다면, 후자 부류의 사람들을 위해서,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하겠다. 역시 사례를 들어서 설명하는 방식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귀에 쏙 들어오는 설명방식일 수도 있다.

다른 대다수의 논객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이춘근의 결정적 한계가 노출되는 지점은 바로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났을 때이다. (당시 애국뉴스는 사전에 웹사이트 배너광고를 통해서 100% 정확하게 예측했고, 그것은 이후 입증되었다.)

이춘근이가 학문적 틀로써, 이런저런 잡다하고 한가한 얘기를 하고 말았지만, 결국 요약해서 말하자면, 그것은 ‘엉뚱한 얘기’였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을 설명하는 핵심적인 단어를 2가지만 꼽자면, 그것을 바로 ‘손자병법’과 ‘양아치’ 행태이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손자병법과 양아치 전략의 결합에 관해서 설명한다.

김정은이는 실제 핵포기 의사가 전혀 없으면서, 트럼프를 거짓으로 유인해서 그 만남을 성사시켰다. 한반도(조선반도) 비핵화니, 뭐니, 어쩌니 해서, 사람들과 트럼프를 헷갈리게 또는 헛물켜게 만들어 놓고, 만남 자체의 열매를 자기가 취했다. 트럼프가 원하는 것, 즉 핵무기를 포기할 듯 하면서, 결국 그 약속 또는 실천은 하지 않은 것이다. 시쳇말로 트럼프가 ‘완전히 새 됐어’ 사건이다.

전통적 병법서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손자병법은, 그 한 구절에 나오길, 적을 그 이익으로 유인하라는 취지의 대목이 나온다. 즉, 트럼프가 오매불망하는 ‘비핵화’라는 이익으로 그를 싱가포르 회담장으로 유인한 것이다. 유인이라는 문맥에 담겨 있듯이, 김정은이는 애초부터 진심이 담겨있지 않는 거짓회담 전략이었다.

그러나 김정은이도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자신에게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 같은 트레이드 마크를 달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양아치’라는 점을 입증한 것이며, 만천하에, 온 세계에 알린 것이었다. 그것은 여러분이 알던, 모르던 상관없이 김정은이가 명확하게 본인의 의지하에 벌인 일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폭력조직 보스나 시정잡배들도 하기 힘든 ‘양아치’ 짓을 김정은이 하고 말았다는 점에서, 그 싱가포르 회담이 전혀 의미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양아치가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다시 이춘근의 한계점으로 돌아오자. 김정은의 양아치짓을 그 무슨 학문적 이론의 틀이나 분석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양아치짓은 그냥 양아치짓인 것이다.

양아치의 행동을 학문적 틀이나 분석으로 설명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맞지 않는다. 그걸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문맥이나 격을 따지는 것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런 시도가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이다. 양아치짓에 대해 학문적 분석을 하는 것은,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이다.

이춘근의 결정적 한계는 바로 학문적 이론의 근거 또는 체계를 뛰어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세상과 국제사회에는 지금까지의 학문적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이 있다. 양아치도 그 중에 하나이다.

이상 이춘근의 한계점에 대해 살펴 보았다. (끝)

[애국뉴스 사설] 2020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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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자료]

[사설] 폭스뉴스를 통해 미국 동향을 파악한다는 사람 (2019년 12월 2일)
https://www.aeguknews.com/?p=231

[사설]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애국진영의 현실

애국진영의 현실을 진단해보자.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것이 이른바 애국진영의 현실이 아닌가?

첫째, 되는 것이 없다. 큰 틀에서 보면, 애국진영은 국가사회적으로 대부분의 분야에서 밀리고 있다. 국가와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이미 많이 도달해 있고, 더 큰 문제는 앞으로 다가올, 닥쳐올 위기의 방향과 수준이다. 이에 대해 어떠한 준비와 대비책, 대안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심히 걱정스러운 현실이다.

과거와 현재의 잘못된 부분을 고칠 힘이 애국진영에 없다. 앞으로 다가올 위기에 대해서도 막아낼 힘이 없다. 그렇기에 큰 틀에서 보자면, 즉 거시적으로는, 애국진영에는 ‘되는 것이 없다’라고 진단하는 것이다.

둘째, 안되는 것도 없다. 애국진영에서는 그 무슨 활동가, 논평가, 언론인, 정치인, 애국시민들이 나름대로 활동하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래서 작은 범위에서 나름대로 관여된 모든 이들이 어떤 형태의 활동을 해오고 있다. 자기 나름대로의 의견과 방향을 가지고 움직이기 때문에, 애국진영이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작은 범위에서는, 즉 미시적으로는 ‘꿈틀대고’는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그들의 의견과 활동의 움직임에 따르면, ‘안되는 것도 없다’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왜냐하면 ‘뭐라도 하긴 하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한 성과가 없어서 그렇지만.

애국진영은 지금껏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그러한 애매하고 답답한 상황에 처해 있다.

자,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 ‘되는 것이 없다’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원점에서 새출발해야 한다.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 해오던 인물들의 의견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둘째, ‘안되는 것도 없다’라는 것의 한계성 또는 허구성을 깨버려야 한다. 나름대로 자잘한 사람과 단체들이 활동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 또는 열매가 없다라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결국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라고 그 현실을 모두가 인정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새로운 방향으로 새로운 고민을 진행해야 한다. 지금껏 안되는 것은 앞으로도 안되는 것이다.

셋째, ‘될 사람’과 함께 해야 한다. 애국진영 안팎의 온갖 잡다한 부류들의 인물들이 있는데, 앞으로는 그들은 자기들 하고 싶은대로 내버려 두고, ‘될 사람’들과 함께 일을 만들어 가야 한다. 되는 사람과, 될 일을 가지고, 되는 방향으로, 움직여 나가야 한다. ‘안되는 사람’과는 백년, 천년이 앞으로 흘러도 일이 되지가 않는다.

넷째, ‘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지금까지 너무나 잘못된 방향과 지휘로 애국진영은 시간과 자금, 그리고 에너지를 낭비해 왔다. 소대장 따라서 실컷 작은 산을 올라갔더니, ‘이 산이 아닌가 보다’라고 했다. 중대장 따라서 힘들게 더 높은 산을 올라갔더니, ‘이 산이 아닌가 보다’라고 반복됐다. 사단장 따라서 아주 높은 산을 올라갔더니, 이번에도 ‘이 산이 아닌가 보다’라고 허탈한 결과를 맞이했다. 어떤 이름있는 철학자가 말했듯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했다.

다섯째, ‘되는 일’을 해야 한다. 지금껏 그 많은 집회, 시위, 유튜브 방송, 인터넷 매체 등에서 활동이 있었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이제는 그 경중과 정확성을 가려서, ‘되는 일’에 집중적으로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그 자원이란 시간, 노력, 자금, 네트워크 등을 포괄하는 말이다. 앞으로는 애국진영의 소중한 자원들을 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애국진영은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돌아보고, 이번에는 현실을 인정하고 새롭게 미래에 대한 구상과 전략을 가다듬어야 한다. (끝)

[애국뉴스 사설] 2020년 5월 18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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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장성 출신 인사들이 모였는데, 왜 안되는가?

대한민국 재야의 활동단체 또는 활동인물 중에는 군 출신 인사들이 있다. 평생 또는 적지 않은 세월 동안, 국가안보를 위해 헌신한 그들의 노고와 기여에 심심한 감사의 표시를 전한다. 군문을 나서고도 국가안보를 위한 그들의 충정어린 각종 의견을 애국시민들이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특히 군 장성 출신 인사들이 결성하거나 그들이 모인 단체들이 있다. 성우회가 대표적이고, 재향군인회에도 그들이 있고, 비교적 최근에는 대수장이라는 단체도 결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모두 국가안보를 위한 소중한 자산들이다. 일부 불협화음이나 각종 잡음을 일으키는 인사들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국가발전과 국가안보에 대한 군 출신 인사들의 기여는 평가받을 만 하고, 평가받아야 한다.

기라성 같은 사람들이 모인 단체라면, 그들의 활동도 눈부시게 빛나야 하고 그들의 성취도 크게 축적되어야만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자면 그 별값, 이름값에 비해서 그동안 국민적 임팩트가 상당히 부족했다. 왜 그럴까? 라고 생각볼 만도 한 시점이다.

현역으로 활동하는 장성들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국민들이 접하고 들을 기회는 별로 없지만, 재야에서 활동하는 예비역 장성들은 애국시민들이 그 의견을 접할 기회가 있다. 물론 현역 시절과 퇴역후 시절에서 말할 수 있는 경험치와 한계치는 다르겠지만, 그 일단이라도 들어보면 나머지 사항도 대략적으로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글자그대로 군복 어깨에 빛나는 별을 1~2개씩, 또는 3~4개씩 달아본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한두사람도 아니고, 몇 명도 아니고, 상당한 숫자의 장성들이 모여서 만든 단체들이다. 그런데 그런 예비역 장성들의 단체들은 이름값과 기대치에 비해서 항상 활동결과가 신통치 않다. 왜 그럴까?

상당한 연구과제에 해당 되는 학문적 주제가 되기도 하겠지만, 일단 여기서는 ‘직관적으로’, 그리고 ‘경험적으로’ 그 이유를 분석 또는 유추해 보자.

국가안보에 대한 그들의 식견과 경험은 대단히 존중받아야 한다. 군조직 특성상, 군복무 특성상, 그리고 최고 지휘관 또는 대부대 지휘경험을 가진 사람의 의견은 일반대중들이 결코 쉽게 이해하거나 따라해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빛을 발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대단히 아이러니(irony) 하게도, 그들의 지식과 정보와 경험이 ‘군사적(military) 측면’에 주로 국한되기 때문이다.

군사분야에 관해서는 그들이 타분야 전문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전문가이겠지만, 대한민국 안보불안의 제반 요소를 고려하면 그들의 인식의 폭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쉽게 말해서, 그들은 ‘군대만 알지’ 다른 것은 모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안보위협은 절대로 군인들이 군사분야의 지식과 정보, 경험만 가지고는 이해할 수가 없는 복잡한 상황이다.

대한민국 적성세력과 체제전복세력은 다양한 전략전술을 가지고, 기만전술을 기반으로 해서, 언론환경을 장악하고, 시민사회세력을 조종하며, 정치권을 필두로 제도권의 각 요소를 접수했거나 나머지도 접수해 나가고 있다. 그들의 체제전복활동에서 ‘군사분야’는 오히려 제한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물론 군대 내에도 반국가세력이 침투하려고 하고, 국방태세약화에 각종 교묘한 공작이 있겠지만, 그들은 대한민국의 군사분야 뿐만 아니라, 국가사회 전체분야를 대상으로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 군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교묘하고 심층적인 차원에서 그들의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정리하자면, 대한민국 애국세력의 군출신 인사들, 특히 장성 출신 인사들, 그리고 그들이 결성한 예비역 장성 단체들이, 그 어마어마한 별값, 이름값에 비해 활동이 초라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활동과 식견이 주로 ‘군사적인 분야’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예비역 장성들이 언론이나 유튜브 방송에 나와서, 각종 무기체계가 어떻고 북한의 군사상황이 어떻고 하면서 떠들지만, 정작 북한의 주특기이자 최대 위협요소인 ‘눈에 보이지 않는 전력요소’에 대한 이해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래서 예비역 장성들이 모여서 ‘나라 망한다’고 웅성웅성하고 탄식하지만, ‘나라가 계속 망하고 있는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체제전복세력들의 교활하고 예리한 ‘비군사적인 전략과 전술, 그 위협’에 대해서는 현역, 예비역 가릴 것 없이, 장성들의 이해가 태부족이다.

이제는 재야에서 활동하는 예비역 장성들도 그 시각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국가안보에서 군사분야 뿐만 아니라, 특히 문화분야, 언론분야, 컨텐츠 분야, 예술분야, 정신세계, 비전통적 국가안보위협 등에 대해 심도있는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 안보환경은 군인들만으로 국가안보를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군인이 아닌 사람들도 함께 힘을 합쳐야 그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는 상황이다. 군인, 민간인 할 것 없이 부지깽이라도 들고 집을 나서야, 나라를 지킬 수 있는 상황이다. (끝)

[애국뉴스 사설] 2020년 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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