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保守統合”에 대해서 떠들고 있는 계절이다. 본지에서는 소위 “보수통합”이라는 欺瞞的인 용어에 대해 그 虛構性을 지적하고자 한다.
(큰 따옴표와 작은 따옴표를 주의해서 볼 것.) “보수통합”이라는 용어는 ‘보수통합’이라는 실제 개념과는 그 뿌리와 줄기가 전혀 다른 것이다. 그 底意가 의심되는 政治宣傳 및 政治工學的 차원에서 不純勢力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인위적으로 개발된 용어로써, 그 용어에서 말하는 “보수”는 ‘보수’가 아니고, “통합”이라는 말도 일반국민들이 알고 있는 ‘통합’이 절대로 아니다.
“보수통합”이라는 말에 현혹되는 일반국민들이 많다. 이른바 보수우파에서도 누구라도 입이 있어서 떠들고 싶은 자들 중에서도, 생각이 없거나 생각이 짧아서 깊은 성찰 없이 덮어높고 “보수통합”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심지어는 애국세력 중에서도 판단이 헷갈리는 사람들은 ‘(이유가 어떻게 됐던 선거도 있고 그 이후를 보더라도) “보수끼리 뭉쳐야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보수통합”이 필요하다‘라는 취지의 논리를 전개한다. 과연 그런 것인가?
“보수통합”이라는 단어를 2개의 단어로 쪼개어 파악해 보자. 먼저 “보수”라는 말부터 살펴보자. 여기에서 말하는 “보수”는 실제의 ’보수‘가 아니다. 여기에서의 “보수”는 억지로 쥐어짜낸 일종의 ’잡탕‘이고 ’짬뽕‘인데, 여러 겹의 layers로 구성되어 있는 인위적인 개념이다.
’(正統) 보수‘를 배신하고 ’(진짜) 보수’의 등 뒤에 칼을 꽂은 ‘가짜 보수’, ‘似而非 보수’, ‘さくら(桜) 보수’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과 어울리는 ‘빨갱이’, ‘간첩’, ‘용공분자’ 등의 부류가 있다. 그리고 그들의 背後에는 반역세력과 체제전복세력이 있는 것으로 의심을 사고 있다. 그 뒤에는 반국가단체와 적성세력이 있다고 추정되고 있다. 반면에 ‘가짜 보수들’과는 다른 맥락에서, 그저 출세와 권력을 위해서 특정 정치세력에 줄을 선 자들도 있고, 단순히 생계와 사업을 위해서 그쪽에 붙은 자들도 있다. 한마디로 그들은 ‘보수세력’을 빙자하는 ‘짬뽕세력’이다.
차분하고 더 깊게 생각해보자. 바람에 펄럭이는 “보수통합”의 깃발 아래에서, 단순히 그 앞에서 소리치고 앞장서고 바람잡는 자들이 문제의 核心은 아니다. 그들은 그저 바람잡이요, 소모품에 불과한 것들이다. 그 배후의 음험하고 노회한 기획세력이 문제의 中心이다. 그 불순세력들은 또다른 차원에서 적성세력 및 반대한민국 세력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배후의 배후’에는 결국 반국가단체의 지령을 받거나 정치공작을 협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쉽게 설명하자면 카메라 앞에서 쇼하는 인간들에 현혹되지 말고, 카메라를 움직이는 사람의 배후에서, 그 배후의 배후에서 누가 무슨 생각으로 ‘전체 쇼(show)’의 각본을 썼고 연출을 진행하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얘기이다.
결국 종국적으로는 北과 연계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것이다. 그래서 “보수통합”에서 말하는 가짜 “보수”는 진짜 ’보수‘가 아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背信者들이라는 것을 강조하지 않아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면서도, 더 나아가서 반역자, 간첩, 공산주의자, 체제파괴자, 독재자 등과 연계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순세력이다. 요즘 세상에 ’간첩‘이 “나 간첩이요” 하겠는가? 진짜 ’빨갱이‘가 “나 빨갱이요”라고 이마에 써붙이고 다니겠는가?
그런 자들이나 그에 협력하거나 포섭된 자들일수록, 자신들의 정체성을 속이기 위해서 “나 보수요”, “나 우파요",”보수통합 합시다“ 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간첩들과 공산주의자들이 배후에서 기획 및 조종을 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보수를 이미 배신한 적이 있거나 배신하고 있는 소모품 또는 쭉쩡이들이 국민들이 보는 前面에서 활개를 치는 것이다.
다음으로 ”통합“이라는 단어를 따져 보자. 그에 담긴 숨은 뜻은 ”해체“, ”분열공작“, ”파괴공작“, ”(보수) 죽이기“, ”(우파) 망할 방도 찾기“, ”배신자들 포용“, ”배신자들 재등용“, ”배신자들 면죄부“ 등의 의도를 담고 있다. 배신자들이 자신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한번의 기회를 더 달라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덮어놓고 그 是是非非를 따지지도 말고 배신자들을 포용하고 힘을 합치자는 무책임하고 무원칙적인 주장이다.
소위 ”보수통합“이라는 얄팍한 주장이 배회하고 있는 가운데, 일반국민들은 물론 보수우파 진영에서도 그 꼼수를 파악하지 못하는 부류들이 있다. 羊頭狗肉이라는 말이 있다. 양고기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파는 정육업자 또는 요식업자가 있다고 치자. 그럼 그 업자가 파는 고기가 액면에서 내세우는 ”양고기“인가? 아니면 그 가짜 표면 뒤의 진짜 실체인 ’개고기‘인가?
“보수통합”과 “양두구육”은 그 본질이 같은 용어이다. 겉으로는 양고기를 걸어놓고 실제로는 개고기를 팔려는 것이다. “보수”를 내세웠지만, 그 者들은 ’보수‘가 아니다. “통합”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소모품 같은 자들의 배후에 있는 음험하고 교활한 자들은 “분열”과 “해체”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가짜 보수들과 그 배후세력들이 진짜 보수들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소위 “보수통합”은 실제로는 ’보수죽이기‘이다.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업자들한테 속아서 양고기를 먹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개고기를 먹은 부류들이다. 한마디로 생각이 짧고 판단력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들인 것이다.
이른바 “보수통합”은 ‘보수죽이기’의 흉계가 숨어 있다. 만시지탄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어디에선가 “보수통합”이라는 단어를 보거나 누구에게서 그런 말을 듣기라도 한다면, ’보수를 죽이려고 저러는 것인가‘라고 생각하면 된다. “보수통합”=’보수죽이기‘. (끝)
[애국뉴스 사설, 2020년 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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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
保守統合(보수통합), 欺瞞的(기만적), 虛構性(허구성), 底意(저의), 政治宣傳(정치선전), 政治工學的(정치공학적), 不純勢力(불순세력), 인위적(人爲的), layers(막, 층, 겹 = (하나의 표면이나 여러 표면 사이를 덮고 있는) 막, layer의 복수형 명사), 正統(정통), 似而非(사이비/ 겉으로는 비슷하나 속은 완전히 다름. 또는 그런 것), さくら(桜)(사쿠라), 간첩(間諜), 용공분자(容共分子), 背後(배후), 반역세력(反逆勢力), 체제전복세력(體制顚覆勢力), 반국가단체(反國家團體), 적성세력(敵性勢力), 깃발(旗- /깃대에 달린 천이나 종이로 된 부분), 核心(핵심), 소모품(消耗品), 음험(陰險), 노회(老獪), 기획세력(企劃勢力), 中心(중심), 지령(指令), 정치공작(政治工作), 협업(協業), 카메라(camera), 쇼(show), 현혹(眩惑), 종국적(終局的), 北(북), 背信者(배신자), 우파(右派), 조종(操縱), 쭉정이(껍질만 있고 속에 알맹이가 들지 아니한 곡식이나 과일 따위의 열매), 前面(전면), 해체(解體), 분열공작(分裂工作), 파괴공작(破壞工作), 방도(方道), 포용(包容), 재등용(再登用), 면죄부(免罪符), 의도(意圖), 是是非非(시시비비), 무책임(無責任), 무원칙(無原則), 배회(徘徊), 羊頭狗肉(양두구육/ 양의 머리를 걸어 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으로, 겉보기만 그럴듯하게 보이고 속은 변변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 정육업자(精肉業者), 요식업자(料食業者), 액면(額面/말이나 글로 표현된 사실이나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실체(實體/실제의 물체. 또는 외형에 대한 실상(實相)), 본질(本質), 者(자), 죽이려고(殺/ intent to kill), 판단력(判斷力), 온전(穩全), 흉계(凶計/ 흉악한 계략), 만시지탄(晩時之歎/ 시기에 늦어 기회를 놓쳤음을 안타까워하는 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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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모 前 대통령 비서실장의 수준에 관해
임모 前 靑瓦臺 祕書室長에 관해 論評한다. 임 아무개는 최근 ‘울산 선거 개입’ 의혹으로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하면서 “분명한 목적 가진 기획된 수사”라고 強辯했다. 임모의 발언에 여당은 “정치검찰 피해자”라고 두둔했고, 야당은 “오만방자 끝판왕”이라고 비판했다. 고개를 빳빳이 세운 임某를 TV화면으로 보니 오래전 임모가 어느 대학에서 행한 特講이 생각난다.
당시 행사가 이루어진 구체적인 연도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으로부터 대략 십오년에서 십칠팔년 정도 사이일 것이다. (필요하다면 기록이 어딘가에 남아있을테니 정확한 연도와 날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장소는 확실히 기억한다. 어느 사립대학의 강의실에서 그 대학 학생회가 초청하여 임모가 특강형식으로 대학생들과의 만남을 가진 것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임모가 지금 정도로 온 국민들에게 알려진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학생운동이나 재야세력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젊은이라면, 임모가 누구라는 것은 다들 알고 있을 정도였다. 1989년 7월~8월 대한민국의 어느 여대생이 방북한 사건은 당시 남북한 사회 모두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 사건에 국한되지 않는 임모의 활약상은 識者層이나 學生運動圈에는 널리 알려진 상태였다.
특정 정치인이나 유명인이 TV화면에 나오는 모습만으로는 일반국민들이 그 實體에 대해 알기는 어려운 법이다. 특히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서 公開的 行步와 非公開的 實體가 큰 차이를 보이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아마도 임 아무개의 경우가 그러한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한다.
공개취재를 나온 主流 언론사 관계자들이 없는 당시 특강에서 임모는 대학생들을 청중으로 비공개 강연회를 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편안한 상태로 비교적 率直하게 이런저런 얘기를 한 듯 보였다. 그러나 강연내용 파악과 강연자의 수준 파악을 위해서 本紙 관계자는 청중석에 앉아있었다. 원래 2시간 예정이었으나, 한시간 내지 한시간 반 정도의 강연이 이루어졌다.
‘임모의 知的 水準을 평가하자면’, 대략 대학교 2~3학년 수준이었다. 명문대학 또는 어느 정도의 수준이 있는 대학의 학생들이라면 3~4학년만 되도 도저히 ‘먹히지 않을 얘기’를 줄곳 해대는 임모를 보면, 우리나라 특정 운동권 세력들이라는 사람들의 그릇과 수준이 낮다는 것을 實感했다.
풋내기 대학 低學年 수준의 부류들에게 나라의 中心이 휘둘리고 뿌리가 흔들리는 것이 안타깝다. 그런 상태를 모르고 지내는 백성들이 딱하고, 알고도 방관하는 국민들이 한심하다.
임 아무개의 수준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 사람이 국정최고책임자의 비서실장을 지냈다는 것 자체가, ‘大韓民國의 水準과 現實’을 赤裸裸하게 말해준다. (끝)
[애국뉴스 사설, 2020. 1. 31.(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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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
某(모), 前(전), 靑瓦臺(청와대), 祕書室長(비서실장), 論評(논평), 強辯(강변), 特講(특강), 識者層(식자층), 學生運動圈(학생운동권), 實體(실체), 公開的(공개적) 行步(행보), 非公開的(비공개적), 主流(주류), 率直(솔직), 本紙(본지=애국뉴스), 知的(지적), 水準(수준), 實感(실감), 低學年(저학년), 中心(중심), 大韓民國(대한민국), 現實(현실), 赤裸裸(적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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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은 왜 강한가?
[애국뉴스 사설] 北은 왜 강한가? (2020. 1. 16.)
힘의 優劣은 相對的인 것이다. 180 센티미터의 높이는 170 센티미터 보다는 높고, 190 센티미터 보다는 낮은 것이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궁극적으로 흐른다.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치솟아 오르는 강물을 본 적이 있는가? 오늘날 나라꼴이 이렇게 된 것은 北이 南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北이 가진 有形戰力의 最高峯은 核武器이다. 그것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져 전쟁에 결정적인 효과를 가지기 때문에 絕對武器라 불리우고 있다. 핵폭탄 맞아보고 그 위력을 아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 직접 맞아본 사람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전부 간접적으로 그 위력을 추측할 뿐이다. 北의 핵무기 보유에 대해 어느덧 사람들은 익숙해져 있지만, 냉전시대 무렵만 하더라도 북이 핵무기를 보유한다는 것은 일반인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北이 가진 無形戰力의 最高峯은 music이다. 이것은 아는 사람만 알고, 볼 수 있는 사람만 보고, 느낄 수 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그것의 위력에 대해서 實感하고 體感할 수 있는 사람은 少數이고, 絕對多數는 알지도 못하고 생각도 못해봤을 것이다. 뮤직을 즐기는 사람이 적다는 뜻이 아니다. 뮤직과 對南革命, 뮤직과 征服事業의 심층적인 관계에 대한 이해를 말하는 것이다.
뮤직의 위력을 擴張하고 變容하여 북은 남한사회를 席卷하고 接收해 버렸다. 그야말로 可恐할 威力이다. 뮤직은 오늘날 北이 남한사람들의 精神을 支配하고 있는 原動力이다. 뮤직을 깊게, 깊게, 더 깊게, 파고, 파고, 또 더 파고 들어가다 보면, 그 핵심에서 인간의 마음을 파악하고 감정을 조종하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그것은 人間精神의 支配로 이어지게 된다. 쉽게 말하자면, 뮤직을 통해 ‘인간을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인간을 움직이면 사회를 움직이고, 사회를 움직일 수 있으면 국가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南이 그러한 悽慘한 狀態에 처해 있고, 北이 그러한 深奧한 境地에 도달한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강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눈에 보이는 강함이라는 것도 그것을 달성하게 만드는 機制는 그 배후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北이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유형의 힘보다는 무형의 힘이 근본적으로 작동한 것이다. 北이 물리적 전쟁 없이 오늘날 남한사회를 지배할 수 있는 힘도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北의 핵무기도 결국은 뮤직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北의 2代 首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결국 오늘날의 南韓 崩壞現象에는 그 사람의 업적과 성취의 결과가 결정적인 바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문화예술인에 대한 특혜제공 뿐만 아니라 영화감독을 납치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자기가 직접 영화까지 만들어 본 사람이기도 하다. 보통사람은 아닌 것이다.
北은 남한 점령을 이미 거의 대부분의 분야에서 달성한 상태이다. 南의 抵抗機制, 또는 抵抗能力은 사실 얼마 남지 않았다. 非公式的인 남한 정복은 이미 大部分 이루었고, 그것이 公式的으로 발표만 안된 상태일 뿐이다. 현 단계에서 그것을 공식화할 경우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격’이 될 수도 있고 副作用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시간은 北의 편이다. 北은 마지막 고비만 넘기면 된다. 지금은 ‘마지막 고비’의 ‘바로 前 고비’인데 지금의 이 고비만 넘기면 그들이 꿈에 그리던 決定的 局面에 진입하게 된다.
人口에 회자되는 이른바 “聯邦制”도 속임수일 가능성이 크다. 北의 欺瞞戰術은 일반국민들과 우익들만 속이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좌익이 좌익마저도 속이는 것이 그 탁월함이다. 결국은 연방제마저 속임수이자 유혹이자 미끼이며, 그 마지막 단계에서는 軍事侵攻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성공한 이후에는 무엇이 올 것인가? 대규모의 남한내 肅淸이 있을 것이다. 일정 시간이 흐른 후에는 상처를 봉합할 것은 봉합하고, 상처가 회복이 안되는 것은 안되는 채로 내버려 두고 자기들끼리 잘 먹고 잘 살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궁극적인 이유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총체적 역량이 민주주의라는 다중통치시스템을 운영할 主人意識과 能力이 不在하기 때문이다. 즉, 아직까지도 한반도에서는 민주주의보다는 王政이 더 어울릴지 모른다는 비관적 평가를 피할 수 없다. 자기들 힘으로 살아갈 의식도 능력도 없는 사회에서는 王의 支配를 받아야만 할지도 모른다. (끝)
[애국뉴스 사설, 2020년 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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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
北(북), 南(남), 優劣(우열), 相對的(상대적), 有形戰力(유형전력), 最高峯(최고봉), 核武器(핵무기), 絕對武器(절대무기), 無形戰力(무형전력), music(뮤직), 實感(실감), 體感(체감), 少數(소수), 絕對多數(절대다수), 對南革命(대남혁명), 征服事業(정복사업), 擴張(확장), 變容(변용), 席卷(석권), 接收(접수), 可恐(가공), 威力(위력), 精神(정신), 支配(지배), 原動力(원동력), 人間(인간), 悽慘(처참), 狀態(상태), 深奧(심오), 境地(경지), 機制(기제), 代(대), 首領(수령), 南韓(남한), 崩壞現象(붕괴현상), 抵抗機制(저항기제), 抵抗能力(저항능력), 非公式的(비공식적), 大部分(대부분), 公式的(공식적), 副作用(부작용), 前(전), 決定的(결정적), 局面(국면), 人口(인구), 聯邦制(연방제), 欺瞞戰術(기만전술), 軍事侵攻(군사침공), 肅淸(숙청), 主人意識(주인의식), 能力(능력), 不在(부재), 王政(왕정), 王(왕), 支配(지배).
좌파는 되는데 우파는 왜 안되는가?
[사설] 좌파(左派)는 되는데, 우파(右派)는 왜 안되는가? (2020. 1. 14.)
2020년 1월 좌파 vs. 2017년 이후 우파.
“예상치 못한 뜨거운 참여로 나흘 만에 모금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조국백서추진위원회)
‘박근혜 대통령 탄핵 선고가 내려진지, 벌써 약 3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 하나, 또는 영화 한편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이른바 ‘보수우파’의 현실이 참으로 초라하다.’ (애국진영 전략가)
‘조국죽이기’에 대응하겠다며 어느 위원회가 모금을 시작한지 ‘나흘만에 목표금액 3억원’을 채웠다는 공지가 나왔다. 좌파는 이렇게 되는데, 우파는 도대체 지금까지 왜 안되는가? 조국백서 제작후원 마감 공지를 보면, 2020년 신년을 맞이하여 여러가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선고가 내려진지도 벌써 햇수로 약 3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이후로 대중들이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은 여기서 거론할 필요가 없고, 일부 이론(異論)이 있는 것은 별론(別論)으로 다루자. 여기서는 탄핵반대 활동의 그 실효성과 후원노력, 그 결과 등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결과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무엇으로 대답할 수 있을지 난감하고 허탈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만 얘기하자면’, 또는 ‘결과만을 놓고 보자면’, 보수우파 또는 애국진영은 탄핵사태 이후로 제대로 성취한 것이, 제대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이 거의 없거나 전무(全無)한 실정이다. 여기서 얘기하는 논점은 그 결과(結果)를 놓고 평가하는 것이다. 결과, 즉 ‘그 열매를 맺은 것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제기이다.
탄핵 사태 및 탄핵 선고 이후 소위 보수우파 세력에서는 큰 단체는 큰 단체대로, 자잘한 단체는 작은 단체대로, 애국시민은 애국시민대로, 그 나름대로 어떤 형태의 활동을 하거나 집회 및 시위 등에 참여하며 목소리를 내거나 힘을 보탰다. 그러나 ‘노력은 있었더라도 결과는 좋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반대 후원활동, 후원금액을 둘러싼 그 과정과 결과도 되새겨 보자. 특정 단체에만도 줄잡아 최소한 몇십억원 이상의 후원금이 걷혔다고 회자되는데, ‘그 돈 가지고 도대체 뭘 했는지’ 문제제기가 없을 수가 없다.
나름대로 알아서, 나름대로 노력하면서 쓴 부분도 있었겠지만, 적절한 회계감사의 영역이 작동했는지 궁금할 뿐만 아니라, ‘집회 참석자가 많아서 스피커를 더 설치해야 했다’는 식(式)의 설명이나 ’10원 한장 짜리도 허투루 쓴데가 없다’는 취지(趣旨)의 해명 대목에서는 고개가 갸우뚱 해지는 측면도 없지가 않다. 하다못해 숫자를 잘못 쓰거나 바쁜 와중에 일부 영수증을 미처 챙기지 못해서라도 ’10원 한장’은 틀릴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하는 의문이다. 특히 통상의 ‘한국적 현실’ 및 기존의 ‘보수우파의 행태’를 생각해 보았을 때, 이런저런 생각은 들지 않을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시행착오는 되돌릴 수 없다 하더라도,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제는 보수우파, 또는 애국진영은 ‘집회 중심’이 아니라 ‘컨텐츠 중심’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시위나 집회가 전혀 필요 없거나 잘못되었다는 지적이 아니다. 존재감(存在感) 확인 및 세력(勢力)의 결집이나 과시를 위해서 일정 차원에서 필요한 부분은 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안된다. 그리고 그 비용 대비 효과(費用對比效果)의 측면을 생각해 보았을 때, 투자에 비해서 결과(投資對比結果)가 신통치 않다. 인풋(input)에 비해서 아웃풋(output)이 없거나 극히 작다면, 이제는 새로운 접근법을 생각해 볼 때도 되지 않았는가?
이러한 접근법은 철학 분야의 ‘존재론(存在論)’과 ‘인식론(認識論)’에까지 이어지는 매우 철학적(哲學的)인 주제이기도 한다. 작금의 한국상황의 문제는 ‘있어도 없는’ 것이 중대한 문제이지 않는가? 좌파는 그 실체와 존재의의가 ‘없어도 있는데’, 우파는 그것들이 ‘있어도 없는’ 기가 막힌 상황이다. 국민들에게 여겨지는 대상(對象)으로서 그렇다는 말이다. 그 인식(認識)으로서 그렇다는 말이다.
기존 방식과 기존 인물들도 문제점 또는 한계점이 있었다. 기존에 존재하는 영상물, 홍보물, 유튜브 방송, 다큐멘터리, 컨텐츠 자료, 그리고 기존에 활동하는 활동가, 언론인, 논객, 문화컨텐츠 제작자, 영화감독 등의 문제점 또는 한계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들의 안목(眼目), 그들의 역량(力量)에는 문제가 있어서, 그들이 만든 컨텐츠에는 임팩트(impact)가 없었다.
질병(疾病)의 증상과 원인을 생각해 볼 때, 이제는 대증요법(對症療法)이 아니라 병의 근원을 치료해야 한다. 결국은 전략(戰略)의 문제이다. 결국은 안목(眼目)의 문제이다. 우파는 반성해야 하고, 애국세력은 새로운 전략을 수립해서 집행해야 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안목이 있는 인재, 전략적 구상을 할 수 있는 ‘인재’의 목소리(人材のvoice)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금으로는 안된다. (끝)
[애국뉴스 사설, 2020년 1월 14일]
www.aeguknews.com
[참고자료]
조국 백서 만든다며 3억 모은 김어준···공지영 “조국팔이 장사”
https://news.joins.com/article/23680822
‘조국 백서’ 만든다며 나흘만에 3억 모금…공지영 “조국팔이 장사”
https://www.aeguktube.com/?p=6091
애국세력이 미국시장 진출을 원한다면?
뜻있는 애국세력이 미국시장 진출을 원한다면 무슨 일부터 추진해야 가장 효과적인 방안일까?
미국정치 지도자들과 미국사회 엘리트층을 대상으로 대한민국 애국세력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한미동맹 차원에서 실질적인 애국사업(愛國事業)을 추진하려면, 다른 그 무엇보다도 제일 먼저 영문(英文)으로 쓰여진 ‘제대로 된 책(冊)’을 써서 출판해야 한다.
현 시대가 영상매체의 시대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세월이지만, 미국에서 지식인 계급을 대상으로 무엇인가 어필하고 설득하고자 할 때에는 책부터 있어야 한다. 미국 식자층에서 누군가를 소개할 때는 그 사람의 출신대학보다 더 중요하고 비중있게 소개되는 항목이 바로 그 사람이 집필한 책이다.
(구)대한애국당(현 우리공화당) 조모 대표가 작년과 올해 미국에 가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렸지만,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고 ‘헛발질’만 하고 왔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실력도 없는 미국변호사’와 ‘통역도 제대로 못하는 통역사’가 그 무슨 보좌 역할을 얼마나 제대로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자고로 일의 성패(成敗)가 어떻게 결말이 나던 간에 그에 관한 모든 종국적인 책임은 리더에게 귀속되는 법이다.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이른바 보수우파 세력에서는 미국 조야(朝野)와의 네트워크 형성과 발전이 긴요한 일일텐데, 그동안 아쉽게도 정부인사들이나 제도권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실질적인 한미간 교류와 협력이 부재했거나 턱없이 부족했다. 현재 애국진영에서 활동하는 지도자들, 각종 이유로 신당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사람들이나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사업을 하는 이들은 이런 부족했던 점을 잘 살펴보고 앞으로 제대로 된 한미간 협력업무를 추진하면 좋을 것이다.
아까운 애국군자금과 소중한 일분일초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상황인식이 먼저 있어야 한다. 미국에서 최정상급(最頂上級) 인사들과 교류하기 위해서는 덮어놓고 약속도 없이 사무실로 찾아가서 ‘한번만 만나 주십쇼’라는 식(式)은 절대로 통하지가 않는다. 예전에 뉴욕타임스 신문에 (대통령 당선 전) 도널드 트럼프와 사진을 찍기로 했다가 불발이 되어 그 대신 그 아들과 사진 한장을 찍는데 몇 만불의 돈을 지불한 중국인 여성을 다룬 기사가 있었다.
미국 정치인들과 어떤 형태의 거래를 하던지, 아니면 어떤 형태의 교류를 하던지 간에 절대로 ‘맨입’으로는 되지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과 지명도가 동원되고, 자신의 귀중한 시간과 자원을 쓰기 마련인 정치관련 네트워크 관계에서 어떠한 반대급부나 어떠한 보상이 없이는 높은 정치적, 사회적 지위의 사람을 활용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세상 이치가 그럴진대 미국은 자본주의의 본고장이고 민주주의의 최전선인데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돈도 써야 하고 시간도 투자해야 하고 여러모로 공도 들여야 한다. 돈만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니다. 대의명분에 부합해야 하고 그들에게 각종 유익하고 쓸모있는 정보와 분석, 의견과 대안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 식자층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문단행본을 필두로, 그를 바탕으로 원 소스 멀티 유스 개념으로 각종 보고서, 제안서, 다큐멘터리, 영화, 방송물, 이념행사, 문화컨텐츠 등으로 진화할 수 있어야 한다.
애국진영에서 어떤 사람이 그런 영문책을 써야 하는가? 일단 영어로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가 원활하게 가능해야 한다. 그것은 최소한의 기본이다. 영어학 분야의 구문론, 의미론, 화용론 등의 기본적 이해는 필수이고 영국문학, 미국문학의 전통과 역사에 대한 이해도 갖춰야 한다. 미국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고 미국 헌법이 어떻게 그런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 지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도 있어야 한다. 미국정치 시스템의 구조와 미국사회의 다층성에 대해 알아야 하고, 미국문화와 교양, 일반상식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경험도 갖추어야 한다.
그런 것들만 갖춘다고 충분조건이 되겠는가? 대한민국 애국진영에서의 직접적 경험도 필수적이다. 영어만 된다고, 미국만 안다고 해서 되는 일이 절대로 아니다. 한국과 미국을 동시에 잘 알아야 하는데, 무엇보다 아스팔트 애국경험이 여러모로 필수불가결(必須不可缺)의 요소이다. 미국 조야에 애국세력을 네트워크화 시키기 위해서는 밑바닥의 생생한 애국투쟁 경험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작금(昨今)의 대한민국 정치사회적 상황을 직시(直視)해 보자. 밀릴 만큼 밀린 상황이다. 암울한 현 시국상황을 타개할 그 무슨 ‘돌파구(突破口)’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가 정부 구실을 못하고 정치가 정치 역할을 못하는 상황에서, 그리고 사분오열되고 지리멸렬한 보수우파 상황에서, 이리저리 헤매고 방황하는 이른바 애국시민들은 그 무엇인가 ‘임팩트(impact)’ 있는 활동에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많이 늦었다. 대한민국 애국세력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애국진영 곳곳을 수소문하고 의견을 종합해서, 과연 ‘누가 애국진영에서 최고의 영어 실력자’인지를 중지(衆志)를 모아야 한다. 그에 대한 결론(結論)을 내야 한다. 최고의 적임자가 절대로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실력을 알아보지 못한 당신의 안목(眼目)에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안목이 없어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데 있었다.
미국의 상원의원(上院議員)들이나 주지사(州知事)들이 읽어보고 탄복할 만한 내용이어야 한다. 그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무릎을 칠 만한 내용이 단행본의 곳곳에 스며들어야 한다. 그래서 ‘이 사람은 직접 만나서 얘기를 꼭 들어봐야겠다’라는 욕구를 불러 일으켜야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덮어놓고 약속도 없이 대뜸 사무실로 찾아가서 (기왕에 왔으니) ‘한번만 만나 주십쇼’라는 취지의 (일부의) 한국인들 특유의 추태쇼는 미국 최정상급 지도자들한테는 통하지가 않는다. 통할 수가 없는 이치이다.
애국진영 안팎의 ‘최고의 영어실력자’를 찾아야 한다. 그에게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단행본 집필이 입으로만 외치고 박수만 치고 어깨만 두드려서 될 일인가? 반드시 물심양면(物心兩面)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돈이라는 것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애국시민들의 소중한 애국군자금(愛國軍資金)이 그동안 수없이 잘못된 곳에 낭비되고, 중간에 착복되고, 남의 돈을 가로채고, 장난질 치고, 남의 이름을 사칭(詐稱)하고 한 면이 적지 않았는데, 이제는 제대로 전략적(戰略的)인 포인트에 투자되어야 할 것이다.
‘영어실력(英語實力)’이라는 것에 대해 말해보면서 끝을 맺자. 하수(下手)들한테는 영어실력이 영어실력을 좌우하는 것이지만, 고수(高手)들에게 있어서 영어실력이라는 것은 비영어실력(非英語實力)이 영어실력을 좌우하는 것이다. 이 말은 간단한 듯 하지만, 심오(深奧)한 얘기이다. (끝)
애국뉴스 사설, 2020년 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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