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는 되는데 우파는 왜 안되는가?

[사설] 좌파(左派)는 되는데, 우파(右派)는 왜 안되는가? (2020. 1. 14.)

2020년 1월 좌파 vs. 2017년 이후 우파.

“예상치 못한 뜨거운 참여로 나흘 만에 모금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조국백서추진위원회)

‘박근혜 대통령 탄핵 선고가 내려진지, 벌써 약 3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 하나, 또는 영화 한편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이른바 ‘보수우파’의 현실이 참으로 초라하다.’ (애국진영 전략가)

‘조국죽이기’에 대응하겠다며 어느 위원회가 모금을 시작한지 ‘나흘만에 목표금액 3억원’을 채웠다는 공지가 나왔다. 좌파는 이렇게 되는데, 우파는 도대체 지금까지 왜 안되는가? 조국백서 제작후원 마감 공지를 보면, 2020년 신년을 맞이하여 여러가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선고가 내려진지도 벌써 햇수로 약 3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이후로 대중들이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은 여기서 거론할 필요가 없고, 일부 이론(異論)이 있는 것은 별론(別論)으로 다루자. 여기서는 탄핵반대 활동의 그 실효성과 후원노력, 그 결과 등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결과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무엇으로 대답할 수 있을지 난감하고 허탈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만 얘기하자면’, 또는 ‘결과만을 놓고 보자면’, 보수우파 또는 애국진영은 탄핵사태 이후로 제대로 성취한 것이, 제대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이 거의 없거나 전무(全無)한 실정이다. 여기서 얘기하는 논점은 그 결과(結果)를 놓고 평가하는 것이다. 결과, 즉 ‘그 열매를 맺은 것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제기이다.

탄핵 사태 및 탄핵 선고 이후 소위 보수우파 세력에서는 큰 단체는 큰 단체대로, 자잘한 단체는 작은 단체대로, 애국시민은 애국시민대로, 그 나름대로 어떤 형태의 활동을 하거나 집회 및 시위 등에 참여하며 목소리를 내거나 힘을 보탰다. 그러나 ‘노력은 있었더라도 결과는 좋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반대 후원활동, 후원금액을 둘러싼 그 과정과 결과도 되새겨 보자. 특정 단체에만도 줄잡아 최소한 몇십억원 이상의 후원금이 걷혔다고 회자되는데, ‘그 돈 가지고 도대체 뭘 했는지’ 문제제기가 없을 수가 없다.

나름대로 알아서, 나름대로 노력하면서 쓴 부분도 있었겠지만, 적절한 회계감사의 영역이 작동했는지 궁금할 뿐만 아니라, ‘집회 참석자가 많아서 스피커를 더 설치해야 했다’는 식(式)의 설명이나 ’10원 한장 짜리도 허투루 쓴데가 없다’는 취지(趣旨)의 해명 대목에서는 고개가 갸우뚱 해지는 측면도 없지가 않다. 하다못해 숫자를 잘못 쓰거나 바쁜 와중에 일부 영수증을 미처 챙기지 못해서라도 ’10원 한장’은 틀릴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하는 의문이다. 특히 통상의 ‘한국적 현실’ 및 기존의 ‘보수우파의 행태’를 생각해 보았을 때, 이런저런 생각은 들지 않을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시행착오는 되돌릴 수 없다 하더라도,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제는 보수우파, 또는 애국진영은 ‘집회 중심’이 아니라 ‘컨텐츠 중심’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시위나 집회가 전혀 필요 없거나 잘못되었다는 지적이 아니다. 존재감(存在感) 확인 및 세력(勢力)의 결집이나 과시를 위해서 일정 차원에서 필요한 부분은 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안된다. 그리고 그 비용 대비 효과(費用對比效果)의 측면을 생각해 보았을 때, 투자에 비해서 결과(投資對比結果)가 신통치 않다. 인풋(input)에 비해서 아웃풋(output)이 없거나 극히 작다면, 이제는 새로운 접근법을 생각해 볼 때도 되지 않았는가?

이러한 접근법은 철학 분야의 ‘존재론(存在論)’과 ‘인식론(認識論)’에까지 이어지는 매우 철학적(哲學的)인 주제이기도 한다. 작금의 한국상황의 문제는 ‘있어도 없는’ 것이 중대한 문제이지 않는가? 좌파는 그 실체와 존재의의가 ‘없어도 있는데’, 우파는 그것들이 ‘있어도 없는’ 기가 막힌 상황이다. 국민들에게 여겨지는 대상(對象)으로서 그렇다는 말이다. 그 인식(認識)으로서 그렇다는 말이다.

기존 방식과 기존 인물들도 문제점 또는 한계점이 있었다. 기존에 존재하는 영상물, 홍보물, 유튜브 방송, 다큐멘터리, 컨텐츠 자료, 그리고 기존에 활동하는 활동가, 언론인, 논객, 문화컨텐츠 제작자, 영화감독 등의 문제점 또는 한계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들의 안목(眼目), 그들의 역량(力量)에는 문제가 있어서, 그들이 만든 컨텐츠에는 임팩트(impact)가 없었다.

질병(疾病)의 증상과 원인을 생각해 볼 때, 이제는 대증요법(對症療法)이 아니라 병의 근원을 치료해야 한다. 결국은 전략(戰略)의 문제이다. 결국은 안목(眼目)의 문제이다. 우파는 반성해야 하고, 애국세력은 새로운 전략을 수립해서 집행해야 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안목이 있는 인재, 전략적 구상을 할 수 있는 ‘인재’의 목소리(人材のvoice)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금으로는 안된다. (끝)

[애국뉴스 사설, 2020년 1월 14일]
www.aeguknews.com

[참고자료]
조국 백서 만든다며 3억 모은 김어준···공지영 “조국팔이 장사”
https://news.joins.com/article/23680822

‘조국 백서’ 만든다며 나흘만에 3억 모금…공지영 “조국팔이 장사”
https://www.aeguktube.com/?p=6091



애국세력이 미국시장 진출을 원한다면?

뜻있는 애국세력이 미국시장 진출을 원한다면 무슨 일부터 추진해야 가장 효과적인 방안일까?

미국정치 지도자들과 미국사회 엘리트층을 대상으로 대한민국 애국세력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한미동맹 차원에서 실질적인 애국사업(愛國事業)을 추진하려면, 다른 그 무엇보다도 제일 먼저 영문(英文)으로 쓰여진 ‘제대로 된 책(冊)’을 써서 출판해야 한다.

현 시대가 영상매체의 시대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세월이지만, 미국에서 지식인 계급을 대상으로 무엇인가 어필하고 설득하고자 할 때에는 책부터 있어야 한다. 미국 식자층에서 누군가를 소개할 때는 그 사람의 출신대학보다 더 중요하고 비중있게 소개되는 항목이 바로 그 사람이 집필한 책이다.

(구)대한애국당(현 우리공화당) 조모 대표가 작년과 올해 미국에 가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렸지만,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고 ‘헛발질’만 하고 왔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실력도 없는 미국변호사’와 ‘통역도 제대로 못하는 통역사’가 그 무슨 보좌 역할을 얼마나 제대로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자고로 일의 성패(成敗)가 어떻게 결말이 나던 간에 그에 관한 모든 종국적인 책임은 리더에게 귀속되는 법이다.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이른바 보수우파 세력에서는 미국 조야(朝野)와의 네트워크 형성과 발전이 긴요한 일일텐데, 그동안 아쉽게도 정부인사들이나 제도권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실질적인 한미간 교류와 협력이 부재했거나 턱없이 부족했다. 현재 애국진영에서 활동하는 지도자들, 각종 이유로 신당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사람들이나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사업을 하는 이들은 이런 부족했던 점을 잘 살펴보고 앞으로 제대로 된 한미간 협력업무를 추진하면 좋을 것이다.

아까운 애국군자금과 소중한 일분일초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상황인식이 먼저 있어야 한다. 미국에서 최정상급(最頂上級) 인사들과 교류하기 위해서는 덮어놓고 약속도 없이 사무실로 찾아가서 ‘한번만 만나 주십쇼’라는 식(式)은 절대로 통하지가 않는다. 예전에 뉴욕타임스 신문에 (대통령 당선 전) 도널드 트럼프와 사진을 찍기로 했다가 불발이 되어 그 대신 그 아들과 사진 한장을 찍는데 몇 만불의 돈을 지불한 중국인 여성을 다룬 기사가 있었다.

미국 정치인들과 어떤 형태의 거래를 하던지, 아니면 어떤 형태의 교류를 하던지 간에 절대로 ‘맨입’으로는 되지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과 지명도가 동원되고, 자신의 귀중한 시간과 자원을 쓰기 마련인 정치관련 네트워크 관계에서 어떠한 반대급부나 어떠한 보상이 없이는 높은 정치적, 사회적 지위의 사람을 활용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세상 이치가 그럴진대 미국은 자본주의의 본고장이고 민주주의의 최전선인데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돈도 써야 하고 시간도 투자해야 하고 여러모로 공도 들여야 한다. 돈만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니다. 대의명분에 부합해야 하고 그들에게 각종 유익하고 쓸모있는 정보와 분석, 의견과 대안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 식자층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문단행본을 필두로, 그를 바탕으로 원 소스 멀티 유스 개념으로 각종 보고서, 제안서, 다큐멘터리, 영화, 방송물, 이념행사, 문화컨텐츠 등으로 진화할 수 있어야 한다.

애국진영에서 어떤 사람이 그런 영문책을 써야 하는가? 일단 영어로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가 원활하게 가능해야 한다. 그것은 최소한의 기본이다. 영어학 분야의 구문론, 의미론, 화용론 등의 기본적 이해는 필수이고 영국문학, 미국문학의 전통과 역사에 대한 이해도 갖춰야 한다. 미국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고 미국 헌법이 어떻게 그런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 지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도 있어야 한다. 미국정치 시스템의 구조와 미국사회의 다층성에 대해 알아야 하고, 미국문화와 교양, 일반상식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경험도 갖추어야 한다.

그런 것들만 갖춘다고 충분조건이 되겠는가? 대한민국 애국진영에서의 직접적 경험도 필수적이다. 영어만 된다고, 미국만 안다고 해서 되는 일이 절대로 아니다. 한국과 미국을 동시에 잘 알아야 하는데, 무엇보다 아스팔트 애국경험이 여러모로 필수불가결(必須不可缺)의 요소이다. 미국 조야에 애국세력을 네트워크화 시키기 위해서는 밑바닥의 생생한 애국투쟁 경험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작금(昨今)의 대한민국 정치사회적 상황을 직시(直視)해 보자. 밀릴 만큼 밀린 상황이다. 암울한 현 시국상황을 타개할 그 무슨 ‘돌파구(突破口)’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가 정부 구실을 못하고 정치가 정치 역할을 못하는 상황에서, 그리고 사분오열되고 지리멸렬한 보수우파 상황에서, 이리저리 헤매고 방황하는 이른바 애국시민들은 그 무엇인가 ‘임팩트(impact)’ 있는 활동에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많이 늦었다. 대한민국 애국세력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애국진영 곳곳을 수소문하고 의견을 종합해서, 과연 ‘누가 애국진영에서 최고의 영어 실력자’인지를 중지(衆志)를 모아야 한다. 그에 대한 결론(結論)을 내야 한다. 최고의 적임자가 절대로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실력을 알아보지 못한 당신의 안목(眼目)에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안목이 없어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데 있었다.

미국의 상원의원(上院議員)들이나 주지사(州知事)들이 읽어보고 탄복할 만한 내용이어야 한다. 그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무릎을 칠 만한 내용이 단행본의 곳곳에 스며들어야 한다. 그래서 ‘이 사람은 직접 만나서 얘기를 꼭 들어봐야겠다’라는 욕구를 불러 일으켜야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덮어놓고 약속도 없이 대뜸 사무실로 찾아가서 (기왕에 왔으니) ‘한번만 만나 주십쇼’라는 취지의 (일부의) 한국인들 특유의 추태쇼는 미국 최정상급 지도자들한테는 통하지가 않는다. 통할 수가 없는 이치이다.

애국진영 안팎의 ‘최고의 영어실력자’를 찾아야 한다. 그에게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단행본 집필이 입으로만 외치고 박수만 치고 어깨만 두드려서 될 일인가? 반드시 물심양면(物心兩面)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돈이라는 것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애국시민들의 소중한 애국군자금(愛國軍資金)이 그동안 수없이 잘못된 곳에 낭비되고, 중간에 착복되고, 남의 돈을 가로채고, 장난질 치고, 남의 이름을 사칭(詐稱)하고 한 면이 적지 않았는데, 이제는 제대로 전략적(戰略的)인 포인트에 투자되어야 할 것이다.

‘영어실력(英語實力)’이라는 것에 대해 말해보면서 끝을 맺자. 하수(下手)들한테는 영어실력이 영어실력을 좌우하는 것이지만, 고수(高手)들에게 있어서 영어실력이라는 것은 비영어실력(非英語實力)이 영어실력을 좌우하는 것이다. 이 말은 간단한 듯 하지만, 심오(深奧)한 얘기이다. (끝)

애국뉴스 사설, 2020년 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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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뉴스를 통해 미국 동향을 파악한다는 사람

이른바 보수우파 진영에서 활동한다는 사람들 중에는 다음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자기는 미국의 방송을 직접 보고 미국의 신문을 직접 읽으면서, 미국의 정세와 동향을 파악한다고 공공연히 또는 은연 중에 ‘자랑하듯이’ 말하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자면, (보통의 교수나 학자는 논외로 하더라도) 이른바 보수우파의 논객을 자처하며 국제정치에 관한 유튜브 방송을 하는 어떤 학자가 있는데, 자기는 미국의 폭스뉴스를 보면서 미국의 동향과 뉴스를 파악한다는 식으로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 사람 뿐만 아니라 보수 인터넷 언론사의 기자들도 가끔씩 폭스뉴스의 논평가 얘기를 무슨 신주단지 모시듯 소개하거나 인용하기도 한다. 보수단체 행사의 연단에서 판사 출신의 어떤 변호사는 굳이 영어로 연설을 해야 하는 상황이 절대로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대중들을 상대로 답답할 정도의 어눌하고 조잡한 영어를 구사하면서 자신의 영어실력 자랑(?)을 심심찮게 하고 있다. 

  어떤 보수 정당의 미국변호사 자격을 가지고 있다는 어떤 여자는 미국변호사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충격적으로’ 영어를 못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도 있다. 그 정당에서 작년과 올해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해서 나름대로 활동을 하려고 한 모양인데,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당대표의 통역을 맡은 젊은이가 있었지만, 그 정도의 통역 내용과 실력으로는 여러 측면에서 역부족이었다. 그런 식으로는, 그리고 그런 실력으로는 미국에서 절대로 ‘임팩트(impact)’ 있는 활동을 할 수가 없다라고 잘라 말하고 싶다.

 누군가 오늘날의 대한민국 신문과 방송을 보면서 한국 동향을 제대로 파악하고자 한다면, 그 사람이 과연 정확하게, 깊이있게 한국정세를 파악할 수가 있는 사람이겠는가?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방송과 신문에 나오는 내용은 피상적인 수준의 얘기이고, 실제 그 바닥에서 움직이는 진정한 흐름은 결코 대중매체를 통해서 파악되는 것이 아니다. 

 국제정치에 관해 유튜브 논평 방송을 하는 어느 교수 출신의 학자는, 자기는 폭스뉴스와 미국매체를 통해 미국뉴스를 가장 신속하게 입수한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말은 틀린 말이고 성립할 수가 없는 말이다. 

 대중들이야 매체를 통해 뉴스를 입수할 수 밖에 없겠지만, 원래 대중매체에서 나오는 소식은 가장 늦게 보도되는 것이다. 누군가 ‘나는 폭스뉴스를 통해 미국뉴스를 신속하게 접하고 있다’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사실 ‘가장 늦게’ 미국 돌아가는 상황을 접하는 사람이다. 물론 대중 차원에서는 그보다 더 늦은 사람이 훨씬 많거나 대부분일 것이다.

 폭스뉴스는 한때 미국 미디어업계에서 큰 반향과 돌풍을 일으키며 ‘폭스뉴스 효과’를 인구에 회자시킨 바 있다. CNN이 너무 밋밋해서 볼 만한 내용도 없고 아주 지루한 방송을 하던 시절에, 폭스뉴스는 과감하고 화려한 편집, 매우 속도감 있는 내용 전개, 출연자들의 거침 없는 입담 등으로 미국 미디어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시점의 기준으로 말하자면, 폭스뉴스는 정통 언론방송이라기 보다는 특정이념세력의 선전매체 수준으로 전락해 버렸다. 미국 사회를 제대로 보고자 하거나 볼 줄 아는 엘리트라면, 절대로 폭스뉴스를 통해서 그 방송에 의지해서 미국사회를 관찰하지는 않는다. 

 지금의 폭스뉴스는 너무 편향적이고, 너무 편협하고, 너무 선전논리에 기반해서 방송을 하고 있다. 최소한의 균형을 가진 언론매체가 아니라, 일방적인 선전매체로 기능하고 있다. 다만 요즘 어떤 소재의 얘기를 그 방송이 하고 있는지 가끔씩 참조 정도는 할 수가 있겠다. 

 그래서 소위 보수우파 일각에서 누군가 ‘나는 폭스뉴스를 통해서 미국을 파악하고 있다’는 취지로 얘기하거나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 사람은 미국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구나’라고 해석하면 된다.  

[애국뉴스 사설 2019. 12.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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