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제는 애국진영도 세계적인 싱크탱크를 키워야 할 때

이제는 애국진영도 세계적인 싱크탱크를 키워내야 할 때이다.

이른바 애국진영은 크고 작은 문제가 있는데, 그 고질병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산이 아닌가 보다’ 현상이다. 목표와 전략을 임의대로 설정하고 일을 추진했는데, 막상 결과라는 뚜껑을 열어보면 낭패인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시간과 노력이 물거품으로 확인되는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현상이다.

이제는 과거의 시행착오을 뒤로 하고, 지금부터는 속도 보다는 방향을 중요시 해야 한다. 잘못된 방향으로 아무리 입에 단내 나도록 뛰어봐야, 결코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 점을 애국진영은 처절하도록 각성해야 한다.

우리가 어떠한 문제점의 원인이나 해결책을 생각해 볼 때가 있다. 사회적 문제나 갈등의 원인을 분석해서, 대안이나 정책을 수립 및 집행할 수도 있다. 여기에서 일반적으로는 우리들의 ‘직관’이 상당부분 작용하고 결과적으로 그 직관이 타당한 경우도 매우 많다.

그러나 어떤 문제나 사안에서 우리들의 직관이 작용했는데, 나중에 시간이 흘러 모든 각도에서 그 문제의 원인과 과정을 분석하고 검토해보면 그 직관이 틀린 경우도 있다. 사안의 본질이 직관과는 다르게 다른 곳에 문제의 소재나 해결책이 있었던 것이다.

세계적 흐름을 주도하는 선진국들은 싱크탱크 활동에 많은 투자와 지원을 하고 있다. 역사적 경험을 통해 연구개발(reseach & development)에 투자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시행착오를 줄이고 정책목표, 사회적 목표에 도달하는데 매우 경제적이라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길을 갈 때는 지도나 내비게이션을 참조하는 것처럼, 미지의 사회목표를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 과정에 대해 사전에 검토하고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긴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의 선진국들이라고 해서 과거에 시행착오가 전혀 없었겠는가? 반드시 있었을 것이다. 인간과 사회는 과거의 실수와 잘못을 딛고 일어서서, 앞으로,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다.

애국진영도 그동안 수많은 군자금을 ‘엉뚱한 곳’에 탕진하거나 낭비해왔다. 애국시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주거나, 곳곳에서 나라를 구하는데 써달라며 애국성금을 보내주었지만, ‘깃발든 자들’이 엉뚱한 산으로 올라갔거나 아예 자기 주머니에 전부 착복만 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인 마이 포켓(in my pocket)!

애국진영의 노장청이 힘을 합친다면, 충분히 세계적인 수준의 싱크탱크가 가능하다. 노년, 장년, 청년이 자기들의 장점과 주특기를 발휘하고, 서로의 빈곳을 채워준다면 지금이라도 세계 정상급의 싱크탱크는 출범할 수가 있다.

노년 인사들의 경우는 그 동안의 인생경험과 경륜, 휴먼 네트워크, 사회적 신뢰자본 등을 동원할 수 있다. 장년 인사들의 경우는 컨텐츠 기획, 생산, 유통 등을 설계할 수 있고, 각종 전략전술 입안과 집행 등을 도맡아서 진행할 수 있는 능력과 경험이 있다.

청년 인사들의 경우 젊은 에너지를 바탕으로 각종 SNS 활동 기획과 추진을 맡아볼 수도 있고, 새로운 시각과 신선한 정보를 젊은 세대들에게 확산 및 유통시킬 수 있는 재주가 있을 것이다.

위의 사례는 일부를 제시한 것이지, 위의 분야에만 국한되는 활동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국제사회의 싱크탱크 산업은 미국이 주도하는데, 영국이나 일본의 싱크탱크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미국의 브루킹스 연구소나 헤리티지 재단, AEI 등을 필두로 엄청나게 많고 다양한 싱크탱크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 정책분석 분야에서는 브루킹스 연구소나 헤리티지 재단의 경우에도 허점이 많고 깊이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깊지는 못하다. 거기에는 그럴 수 밖에 없는 구조적, 현실적 한계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소위 보수우파에서도 그동안 그 무슨 연구소라는 ‘간판’이 걸린데가 있었는데, 명실상부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싱크탱크 산업과 활동의 핵심 중의 핵심은 바로 ‘인적자원’인데, 직간접적으로 관여된 사람들의 수준과 깊이가 그 이름에 걸맞는 것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출연 연구소들은 한국적 풍토에 비추어서, 정권의 향배에 따라 그 연구결과나 방향이 ‘춤을 추는 경우’도 많다. 민간영역의 연구소들은 자본의 논리와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다. 재야에서는 일부 역량있는 인사들이 있었지만, 큰틀에서 세계적인 싱크탱크를 출범시키기에는 이해도 부족했고 능력도 부족했다.

이제는 애국진영도 R&D의 중요성을 느껴야 한다. 연구개발이나 전략전술의 수립 없이, 아무 산이나 마구 오르는 폐해를 완전히 없애 버려야 한다.

삼삼오오 뜻이 맞는 사람들이 가까운 동네 야산을 운동삼아 오르는 것쯤이야, 잘못된 방향으로 가더라도 이내 되돌아 올 수 있다. 그러나 수만 이상, 수십만 이상의 대병력을 지휘하는 장수라면, 반드시 대군을 움직이기 전에 생각해야 한다. 어떠한 전략적 목표 아래 어떠한 전술적 운용을 할 것인지, 반드시 ‘군대를 움직이기 전에’ 검토해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의 애국진영은 장수도 문제가 있었고, 병졸들도 문제가 있었다. 장졸 모두 각성하고 분발해야 한다. 시쳇말로, 또는 우스개말로 ‘당나라 군대’라는 단어가 연상되는 보수우파 진영이었다.

(물론 애국진영과 보수우파진영은 그 범위의 크기가 다른 어휘이자 집단이다. 보수우파진영은 애국진영의 부분집합이며, 애국진영은 보수우파진영의 전체집합이다.)

앞으로는 ‘나를 따르라!’ 라고 해놓고는, ‘이 산이 아닌가 보다!’ 라고 하는 행태와 시행착오는 애국진영에서 없어져야 한다. 그것은 세계적인 싱크탱크 출범과 육성이 필요한 명확한 이유이다. (끝)

[애국뉴스 사설] 2020년 5월 22일(금)

www.aeguknews.com

[사설] 한반도 정세 분석과 일본어

한반도 정세 파악과 이해를 위해서 애국진영과 본 정보와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그것은 한반도 정세와 일본어의 관계에 대한 관찰과 경험이다. 애국진영에서 참조하길 바란다.

한반도 정세에 관해서 분석과 논평을 하는 개인과 기관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품질을 확보한 개인과 기관들도 있다. ‘랭킹(ranking)’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기질이나, 랭킹을 매기는 것을 좋아하는 한국의 풍토를 반영하여, 다른 사설에서는 한반도 정세 분석에 관한 랭킹도 매겨보기로 한다. 금일에는 애국진영, 한반도 정세, 그리고 일본어에 관해서만 살펴본다.

한반도 정세의 파악과 분석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데이터가 활용될 수 있고 활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그러한 수집되고 축적된 데이터를 어떻게 분석하고 이해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그러한 분석을 가지고 정책수립과 집행에 반영한다든가, 법률과 제도 수립에 활용한다든가, 개인과 조직이 각자의 행동과 진로에 대한 의사결정에 활용하는 등의 분석 수요(analysis demand)가 존재할 것이다.

‘눈뜬 장님’ 얘기부터 해보자. 한국에는 눈뜬 장님들이 많다. 자기들이 한국에 대해 잘 알아서, 한국의 정치상황이나 시국상황에 대해 이러저리 떠드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의 인식의 출처, 인식의 근원을 따라가보면 주로 대중매체에서 획득한 정보나 뉴스일 때가 많고, 또는 다른 이들로부터와의 접촉이나 교류를 통해서 획득한 자료나 의견일 때가 비일비재하다.

권력을 가진 자나, 또는 권력을 추구하고 획득하려는 자들은 대중언론매체나 대중문화매체를 그냥 두지 않거나 그냥 두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대중매체들은 ‘권력의 기반’이거나 ‘권력창출의 기반’, 또는 ‘권력유지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중요한 기반이기 때문에, ‘권력 의지’가 비교적으로, 상대적으로 강한 자들은 그러한 대중매체를 활용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심지어는 ‘조작’하려고 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만약에 대중들이 정보를 입수하는 그러한 언론매체들이 권력의지를 나쁜 자들에 의하여 오염된 경우에는 그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더욱이 대중들이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대중매체의 컨텐츠를 소비하는 경우에는? 오염된 식재료를 활용한 음식을 섭취하는 경우에는 배탈이 나거나 몸에 이상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잘못된 오염된 정보를 지속적으로 소비하는 경우에도, 대중들의 정신과 판단에 탈이 나거나 이상을 일으킬 수 있는 이치이다.

한국에는 ‘정보 식중독’, ‘뉴스 식중독’에 걸린 대중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기가 식중독에 걸린지도 모르고, 계속 잘못된 뉴스와 정보를 소비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른바, 보수니, 우파니, 애국진영이니 하는 주위에는 ‘저 잘난 맛에’ 이리저리 자신의 정치논평과 시국견해를 거침없이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간접적으로 주입되거나 학습된 내용들을 단편적으로 ‘재유통’ 하는 경우에 그친다. 오리저널 컨텐츠가 비교적 드물다.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언급한다. 정말 신기한 것은 한국 내에서도 잘못된 정보와 분석을 가지고 잘못된 이해와 판단을 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어떻게 ‘바다 건너에서’ (비교적) 정확하게 한반도 정세를 이해하고 분석하는지 정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일본이라는 나라, 일본인이라는 사람들에 대해서 한국인들의 정말 그들의 실력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특히 일본 지식인들은 수준이 다르다. 대중매체에서 활약하는 일본 논평가/비평가들의 의견과 분석을 보면, 가끔씩 무릅을 치고 탄복할 만한 내용이 나오곤 한다. 한국의 대중매체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내용이다. 정말 깊이가 있고 핵심을 찌르는 분석과 이해이다. 저절로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는 탁월한 견해이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일본 논평가들의 수준이 저 정도라면, 눈에 보이지 않게 활동하는 ‘일본의 분석가’, 특히 ‘일본의 전략가’들은 어느 정도일까 심히 궁금해지기도 한다. 우리는 일본의 분석가들과 전략가들이 누군인지, 어디에서 일하는지, 어디에서 사는지 등에 대해 그들의 정보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이 무엇을 먹고, 어디에서 자고, 어디에서 일하며, 누구를 만나고,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도리가 없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들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그들은 지금 일본 내부나 외부에서 지금도 차분하면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을 것이다.

애국진영의 지도급 인사라면, 특히 그들이 한반도 정세에 관해 정확한 이해와 심도있는 분석을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일본어를 공부해야 한다’.

일본어를 공부해야 한다? 내 인생 늘그막에 무슨 말인가 반문할 수도 있지만,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은 끝없는 ‘인생 마라톤’과 같다. 벼락치기로 안되는 것이 외국어 공부이다. 평소 꾸준하면서도, 끝없는 노력을 기울일 때, 오랜 시간, 심지어 오랜 세월이 흘렀을 때, ‘어느 정도나마’ 감을 잡을 수 있는 것이 외국어 학습의 특성이다. 왜냐하면 남의 나라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영어는 어떻하고? 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다. 오늘날 영어는 글로벌 언어이기 때문에 당연히 공부해야 한다. 필자도 대학에서 영어를 심도있게 공부한 사람으로서 30년 이상을 영어학습에 노출되거나 영어환경에 노출된 경험을 가진 사람이다. 고등학교 때는 독일어를 공부하고, 대학 때는 프랑스어까지도 수강해보고 접해본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일본어를 배워야 된다!’라고 ‘강하게’ 주장할 때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긴 얘기를 짧은 지면에 다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핵심만 요약에서 말하자면, 그만큼 한반도 정세의 이해와 분석에 관한 양질의 고급자료가 일본어로 생산되고 표현되며 유통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자료나 영어자료만 참고하는 사람들은 절대 접할 수가 없는 자료들이다. 그래서 일본어를 배워야 하는 것이다.

요즘에는 이름있는 검색엔진의 번역기술이 과거와는 차원이 다르게 발전했기 때문에, 첨단 기술을 이용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도움을 받을 수가 있다. 그러나 역시 자신이 직접적으로 이해하는 것만큼은 따라올 수가 없을 것이다.

일본의 지식인들, 전략가들, 분석가들, 논평가들은 한국의 이름뿐인 소위 ‘전문가들’과는 차원과 격이 다르다. 그들의 시각과 분석을 우리가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정말 일본이라는 나라의 깊이와 넓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중국마저도 한국은 만만하게 보고 무시하지만, 일본을 상대로는 절대로 만만하게 보지 않고 심지어 두려워 하기까지도 한다.

2차대전 당시 미국과 한판 제대로 붙어본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당시 조선(한국)에서 어지러운 시국에 지저분한 골목에서 지저분한 몰골로 한국인들이 방황하고 있을 때, 일본은 항공모함 함대를 이끌고 여기저기 다니며 글로벌패권 추구를 시도한 국가이다.

그것도 오늘날이 이야기가 아니라, 책 속에 영화 속에 나오는 예전의 이야기이고 과거의 역사이다. 우리는 예전에도 뒤쳐졌고 현재도 밀리고 있다. 이것을 자각하고 반성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미래에도 뒤쳐져 있을 것이다.

그 뒤쳐짐의 결과는 아마도 방황과 고통일 것이다. (끝)

[애국뉴스 사설] 2020년 5월 21일(목)

www.aeguknews.com

[사설] 이춘근의 한계

이춘근의 한계에 대해서 살펴본다. 이춘근의 한계점을 논하자면, 일반적으로 교수 출신이나 학자 출신 인사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될 수 있는 특징이면서도, 이춘근 개인적으로도 그 한계점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개별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이춘근은 보수진영 내에서 그마다 국제문제, 또는 시사문제에 대해서 학문적 이론의 틀을 가지고 설명한다는데, (비교적으로 말해서) 그 존재의의가 적지 않다. 이른바 보수니, 우파니 하는 깃발을 내세우면서, 유튜브나 길거리에서 자기 목소리만 높이고, 그 근거제시가 척박하거나 그 세련도가 떨어지는 논객 또는 개인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춘근은 박사이면서 교수 출신답게, 그나마 체계화된 학문적 이론의 근거와 배경을 설명하기에, 적어도 그 점에서만큼은 다른 조잡한 인사들과는 차별화된 점이기도 하다. 소위 보수진영에 아무 내용도 없이, 목소리만 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무식한 사람들의 일반적 특징이, 자기가 무식한 줄 모른다는 점이다.

그런 이춘근이지만, 바로 그 점은 이춘근의 한계점과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이춘근의 결정적 한계는 바로 학문적 이론의 근거 또는 체계를 뛰어넘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참으로 복잡다단하다. 글로벌 시대인 오늘날의 국제환경은 정말로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인종들, 다양한 문화들이 서로 교류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고립된 채, 각자의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학문적 이론의 가치는 우리가 그러한 복잡한 세상과 국제정세를 파악함에 있어서, 일정 정도의 ‘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한 것이다. 우리가 세계를 관찰하는 어떠한 창(window)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과거의 수많은 출중한 학문적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관찰과 고민을 간접적으로 흡수하는데 있어서, 학문적 수련과 연마의 과정만큼 그것을 집약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방법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제도권 교육, 정형화된 학문과정의 코스는 단점도 적지 않지만은, 장점도 무척 크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학문적 후속세대에서 인류문명과 선배세대의 축적된 업적을 효과적으로, 효율적으로, 압축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문적 과정의 의미와 중요성은 그 무게감이 결코 작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과거에 일어난 현상이 반드시 오늘날의 현상을 설명하는데, 미래에 일어날 현상을 예측하는데, 항상 타당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의 이론이 오늘날의 사건을 설명하지 못할 수 있고, 미래에 일어날 현상에 대해 효용성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사회과학이나 정치학 분야는 자연과학이나 기술분야와는 그 성격과 원리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정치학이나 사회과학 분야의 학문적 분야로서 성격도 그럴진데, 현실 정치나 현실의 국제정치는 대단히 변화무쌍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예측불가성이 항상 내재되어 있다. 그것은 인간 개인들과 그들의 집합체인 사회 전체가, 합리적인 과학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이성과 감성의 조합’인 인간들의 세계를 다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춘근의 글이나 논평, 분석을 일부라도 접해보면, 그 사람은 자기가 이때까지 접해온 분석의 틀, 이론의 틀에 ‘갖혀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이 정도로 얘기해서 말귀를 알아듣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감이 잘 안잡히고, 뜬구름 잡는 듯이 들리는 사람도 있다면, 후자 부류의 사람들을 위해서,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하겠다. 역시 사례를 들어서 설명하는 방식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귀에 쏙 들어오는 설명방식일 수도 있다.

다른 대다수의 논객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이춘근의 결정적 한계가 노출되는 지점은 바로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났을 때이다. (당시 애국뉴스는 사전에 웹사이트 배너광고를 통해서 100% 정확하게 예측했고, 그것은 이후 입증되었다.)

이춘근이가 학문적 틀로써, 이런저런 잡다하고 한가한 얘기를 하고 말았지만, 결국 요약해서 말하자면, 그것은 ‘엉뚱한 얘기’였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을 설명하는 핵심적인 단어를 2가지만 꼽자면, 그것을 바로 ‘손자병법’과 ‘양아치’ 행태이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손자병법과 양아치 전략의 결합에 관해서 설명한다.

김정은이는 실제 핵포기 의사가 전혀 없으면서, 트럼프를 거짓으로 유인해서 그 만남을 성사시켰다. 한반도(조선반도) 비핵화니, 뭐니, 어쩌니 해서, 사람들과 트럼프를 헷갈리게 또는 헛물켜게 만들어 놓고, 만남 자체의 열매를 자기가 취했다. 트럼프가 원하는 것, 즉 핵무기를 포기할 듯 하면서, 결국 그 약속 또는 실천은 하지 않은 것이다. 시쳇말로 트럼프가 ‘완전히 새 됐어’ 사건이다.

전통적 병법서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손자병법은, 그 한 구절에 나오길, 적을 그 이익으로 유인하라는 취지의 대목이 나온다. 즉, 트럼프가 오매불망하는 ‘비핵화’라는 이익으로 그를 싱가포르 회담장으로 유인한 것이다. 유인이라는 문맥에 담겨 있듯이, 김정은이는 애초부터 진심이 담겨있지 않는 거짓회담 전략이었다.

그러나 김정은이도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자신에게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 같은 트레이드 마크를 달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양아치’라는 점을 입증한 것이며, 만천하에, 온 세계에 알린 것이었다. 그것은 여러분이 알던, 모르던 상관없이 김정은이가 명확하게 본인의 의지하에 벌인 일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폭력조직 보스나 시정잡배들도 하기 힘든 ‘양아치’ 짓을 김정은이 하고 말았다는 점에서, 그 싱가포르 회담이 전혀 의미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양아치가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다시 이춘근의 한계점으로 돌아오자. 김정은의 양아치짓을 그 무슨 학문적 이론의 틀이나 분석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양아치짓은 그냥 양아치짓인 것이다.

양아치의 행동을 학문적 틀이나 분석으로 설명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맞지 않는다. 그걸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문맥이나 격을 따지는 것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런 시도가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이다. 양아치짓에 대해 학문적 분석을 하는 것은,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이다.

이춘근의 결정적 한계는 바로 학문적 이론의 근거 또는 체계를 뛰어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세상과 국제사회에는 지금까지의 학문적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이 있다. 양아치도 그 중에 하나이다.

이상 이춘근의 한계점에 대해 살펴 보았다. (끝)

[애국뉴스 사설] 2020년 5월 19일

www.aeguknews.com

[관련 자료]

[사설] 폭스뉴스를 통해 미국 동향을 파악한다는 사람 (2019년 12월 2일)
https://www.aeguknews.com/?p=231

[사설]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애국진영의 현실

애국진영의 현실을 진단해보자.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것이 이른바 애국진영의 현실이 아닌가?

첫째, 되는 것이 없다. 큰 틀에서 보면, 애국진영은 국가사회적으로 대부분의 분야에서 밀리고 있다. 국가와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이미 많이 도달해 있고, 더 큰 문제는 앞으로 다가올, 닥쳐올 위기의 방향과 수준이다. 이에 대해 어떠한 준비와 대비책, 대안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심히 걱정스러운 현실이다.

과거와 현재의 잘못된 부분을 고칠 힘이 애국진영에 없다. 앞으로 다가올 위기에 대해서도 막아낼 힘이 없다. 그렇기에 큰 틀에서 보자면, 즉 거시적으로는, 애국진영에는 ‘되는 것이 없다’라고 진단하는 것이다.

둘째, 안되는 것도 없다. 애국진영에서는 그 무슨 활동가, 논평가, 언론인, 정치인, 애국시민들이 나름대로 활동하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래서 작은 범위에서 나름대로 관여된 모든 이들이 어떤 형태의 활동을 해오고 있다. 자기 나름대로의 의견과 방향을 가지고 움직이기 때문에, 애국진영이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작은 범위에서는, 즉 미시적으로는 ‘꿈틀대고’는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그들의 의견과 활동의 움직임에 따르면, ‘안되는 것도 없다’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왜냐하면 ‘뭐라도 하긴 하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한 성과가 없어서 그렇지만.

애국진영은 지금껏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그러한 애매하고 답답한 상황에 처해 있다.

자,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 ‘되는 것이 없다’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원점에서 새출발해야 한다.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 해오던 인물들의 의견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둘째, ‘안되는 것도 없다’라는 것의 한계성 또는 허구성을 깨버려야 한다. 나름대로 자잘한 사람과 단체들이 활동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 또는 열매가 없다라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결국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라고 그 현실을 모두가 인정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새로운 방향으로 새로운 고민을 진행해야 한다. 지금껏 안되는 것은 앞으로도 안되는 것이다.

셋째, ‘될 사람’과 함께 해야 한다. 애국진영 안팎의 온갖 잡다한 부류들의 인물들이 있는데, 앞으로는 그들은 자기들 하고 싶은대로 내버려 두고, ‘될 사람’들과 함께 일을 만들어 가야 한다. 되는 사람과, 될 일을 가지고, 되는 방향으로, 움직여 나가야 한다. ‘안되는 사람’과는 백년, 천년이 앞으로 흘러도 일이 되지가 않는다.

넷째, ‘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지금까지 너무나 잘못된 방향과 지휘로 애국진영은 시간과 자금, 그리고 에너지를 낭비해 왔다. 소대장 따라서 실컷 작은 산을 올라갔더니, ‘이 산이 아닌가 보다’라고 했다. 중대장 따라서 힘들게 더 높은 산을 올라갔더니, ‘이 산이 아닌가 보다’라고 반복됐다. 사단장 따라서 아주 높은 산을 올라갔더니, 이번에도 ‘이 산이 아닌가 보다’라고 허탈한 결과를 맞이했다. 어떤 이름있는 철학자가 말했듯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했다.

다섯째, ‘되는 일’을 해야 한다. 지금껏 그 많은 집회, 시위, 유튜브 방송, 인터넷 매체 등에서 활동이 있었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이제는 그 경중과 정확성을 가려서, ‘되는 일’에 집중적으로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그 자원이란 시간, 노력, 자금, 네트워크 등을 포괄하는 말이다. 앞으로는 애국진영의 소중한 자원들을 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애국진영은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돌아보고, 이번에는 현실을 인정하고 새롭게 미래에 대한 구상과 전략을 가다듬어야 한다. (끝)

[애국뉴스 사설] 2020년 5월 18일 월요일

www.aeguknews.com

군 장성 출신 인사들이 모였는데, 왜 안되는가?

대한민국 재야의 활동단체 또는 활동인물 중에는 군 출신 인사들이 있다. 평생 또는 적지 않은 세월 동안, 국가안보를 위해 헌신한 그들의 노고와 기여에 심심한 감사의 표시를 전한다. 군문을 나서고도 국가안보를 위한 그들의 충정어린 각종 의견을 애국시민들이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특히 군 장성 출신 인사들이 결성하거나 그들이 모인 단체들이 있다. 성우회가 대표적이고, 재향군인회에도 그들이 있고, 비교적 최근에는 대수장이라는 단체도 결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모두 국가안보를 위한 소중한 자산들이다. 일부 불협화음이나 각종 잡음을 일으키는 인사들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국가발전과 국가안보에 대한 군 출신 인사들의 기여는 평가받을 만 하고, 평가받아야 한다.

기라성 같은 사람들이 모인 단체라면, 그들의 활동도 눈부시게 빛나야 하고 그들의 성취도 크게 축적되어야만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자면 그 별값, 이름값에 비해서 그동안 국민적 임팩트가 상당히 부족했다. 왜 그럴까? 라고 생각볼 만도 한 시점이다.

현역으로 활동하는 장성들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국민들이 접하고 들을 기회는 별로 없지만, 재야에서 활동하는 예비역 장성들은 애국시민들이 그 의견을 접할 기회가 있다. 물론 현역 시절과 퇴역후 시절에서 말할 수 있는 경험치와 한계치는 다르겠지만, 그 일단이라도 들어보면 나머지 사항도 대략적으로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글자그대로 군복 어깨에 빛나는 별을 1~2개씩, 또는 3~4개씩 달아본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한두사람도 아니고, 몇 명도 아니고, 상당한 숫자의 장성들이 모여서 만든 단체들이다. 그런데 그런 예비역 장성들의 단체들은 이름값과 기대치에 비해서 항상 활동결과가 신통치 않다. 왜 그럴까?

상당한 연구과제에 해당 되는 학문적 주제가 되기도 하겠지만, 일단 여기서는 ‘직관적으로’, 그리고 ‘경험적으로’ 그 이유를 분석 또는 유추해 보자.

국가안보에 대한 그들의 식견과 경험은 대단히 존중받아야 한다. 군조직 특성상, 군복무 특성상, 그리고 최고 지휘관 또는 대부대 지휘경험을 가진 사람의 의견은 일반대중들이 결코 쉽게 이해하거나 따라해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빛을 발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대단히 아이러니(irony) 하게도, 그들의 지식과 정보와 경험이 ‘군사적(military) 측면’에 주로 국한되기 때문이다.

군사분야에 관해서는 그들이 타분야 전문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전문가이겠지만, 대한민국 안보불안의 제반 요소를 고려하면 그들의 인식의 폭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쉽게 말해서, 그들은 ‘군대만 알지’ 다른 것은 모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안보위협은 절대로 군인들이 군사분야의 지식과 정보, 경험만 가지고는 이해할 수가 없는 복잡한 상황이다.

대한민국 적성세력과 체제전복세력은 다양한 전략전술을 가지고, 기만전술을 기반으로 해서, 언론환경을 장악하고, 시민사회세력을 조종하며, 정치권을 필두로 제도권의 각 요소를 접수했거나 나머지도 접수해 나가고 있다. 그들의 체제전복활동에서 ‘군사분야’는 오히려 제한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물론 군대 내에도 반국가세력이 침투하려고 하고, 국방태세약화에 각종 교묘한 공작이 있겠지만, 그들은 대한민국의 군사분야 뿐만 아니라, 국가사회 전체분야를 대상으로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 군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교묘하고 심층적인 차원에서 그들의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정리하자면, 대한민국 애국세력의 군출신 인사들, 특히 장성 출신 인사들, 그리고 그들이 결성한 예비역 장성 단체들이, 그 어마어마한 별값, 이름값에 비해 활동이 초라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활동과 식견이 주로 ‘군사적인 분야’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예비역 장성들이 언론이나 유튜브 방송에 나와서, 각종 무기체계가 어떻고 북한의 군사상황이 어떻고 하면서 떠들지만, 정작 북한의 주특기이자 최대 위협요소인 ‘눈에 보이지 않는 전력요소’에 대한 이해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래서 예비역 장성들이 모여서 ‘나라 망한다’고 웅성웅성하고 탄식하지만, ‘나라가 계속 망하고 있는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체제전복세력들의 교활하고 예리한 ‘비군사적인 전략과 전술, 그 위협’에 대해서는 현역, 예비역 가릴 것 없이, 장성들의 이해가 태부족이다.

이제는 재야에서 활동하는 예비역 장성들도 그 시각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국가안보에서 군사분야 뿐만 아니라, 특히 문화분야, 언론분야, 컨텐츠 분야, 예술분야, 정신세계, 비전통적 국가안보위협 등에 대해 심도있는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 안보환경은 군인들만으로 국가안보를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군인이 아닌 사람들도 함께 힘을 합쳐야 그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는 상황이다. 군인, 민간인 할 것 없이 부지깽이라도 들고 집을 나서야, 나라를 지킬 수 있는 상황이다. (끝)

[애국뉴스 사설] 2020년 5월 12일.
www.aeguknews.com

변희재의 명과 암 (부제: 변희재의 주특기와 한계)

변희재에 대해 논평한다.

논객이자 미디어사업가인 변희재는 명암이 교차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변희재는 주특기와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변희재의 주특기는 이른바 ‘시비’를 잘 건다는 것, 그리과 잘 걸수 있다는 점이다. 변희재의 한계는 그가 전략적 사고와 통찰력에 한계점을 보인다는 것이다.

‘시비’에 대해서 중립적으로 평가하자면, 그 말 자체는 무색무취한 말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고 가린다는 것은 그 이유 여하와 정당성에 그 의미가 달린 것이다.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는 그 시비를 가리는 것이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다.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당해본 사람이라면, 그 옳고 그름을 가린다는 것이 무척 필요한 일이고 개인적, 사회적, 법률적 요구라는 것을 공감할 것이다.

그 시비를 따지는 일에서, 사안마다의 정당성이 부재하거나 그 무게감또는 근거가 약할 때, 그 ‘시비를 건다’는 말이 가지는 어감은 상당히 다르다. 통상 시쳇말로 ‘어떤 X이 시비를 건다’는 말이 있다. 말 같지도 않은 말을 가지고, 어거지로 떼를 쓰며 자신의 주장과 이익을 관철하고자 할 때 사회적으로 흔히 사용되는 표현이다.

변희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낱말이 바로 ‘전문 시비꾼’이다. 크고 작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크고 작은 ‘시비꺼리’를 가지고 끊임없이 싸운다. 그 과정에서 여기에 붙기도 하다가, 싸우고 갈라지고, 저기에 붙기도 했다가, 거기에서도 싸우고 갈라서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잡음’(노이즈)이 발생하기도 한다. 잡음이 없는 변희재는 일면 상상하기 어려운 그의 이미지이다.

시비를 거는 것은 누구라도 입이 있고 손가락이 있으면,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세련됨과 근거제시의 유무와 수준 차이가 다를 뿐이지, 살아가면서 인간은 누구나 시비를 따질 수 있고 따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변희재의 결정적 한계를 짚어보자. 그의 한계는 전략적 사고와 통찰력의 수준에서 나타난다. 설명하자면, 그는 한 개인이나 어느 조직의 사소한 이슈들에 대해서는 각종 시비를 잘 걸지만, 국가적으로(그리고 세계적으로) 매우 크고 중요한 이슈들에 대해서는 통찰의 깊이가 깊지 못하고 전략의 수준이 높지 못하다.

대표적인 사례를 누군가 요구한다면, 예를 들어 미국과 북한 간에,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났을 때를 전후해서, 변희재가 보인 분석과 해설은 ‘완전한 오판’이었다. 그 정도의 잘못된 분석이면, 정상적인 예의와 양심을 가진 논객이나 평론가라면, 자신의 잘못된 분석에 대해 그 전후사정을 설명하고, 수용자나 시청자, 독자들한테 깨끗하고 사과해야 했다.

자신의 잘못된 분석과 예측에 대해 승복하는 것이, 반드시 부끄럽거나 감추어야 할 수치는 아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본의 아니게 크고 작은 실수를 할 수는 있는 것이고, 특히 공인이라면 공적인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잘못이나 실수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특히 애국시민들이 그 정도의 실수나 오판마저도 수용 못할만큼 째째한 사람들은 아니다. 다들 나름대로 평생을 살아오면서 쌓아온 경험고 노하우가 있는 분들이다. 그분들의 인생경험이 변희재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그보다 적지가 않다.

전략은 통찰에서 나온다. 인간과 사회, 국가와 세계를 바라보면서, 그 움직임과 변화를 깊이 음미하면서, 통찰의 폭과 넓이가 반영되는 것이다. 그로부터,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목표에 도달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이 도출되는 것이다. 그 전략적 수단에 대한 달성도구로써, 각종 전술과 전술수단이 강구되는 것이다. 요컨대 변희재는 전문 시비꾼으로서 시비는 잘 걸지만, 통찰과 전략에는 약하다는 것이다.

그가 ‘자기편에 총질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 비판하는 사람들의 ‘인식의 한계’를 반영하는 비판이다. 자기편에 총질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편이라고 생각을 안하기 때문에 총질을 하는 것이다.

통찰과 전략적 사고를 하는 것은 후천적으로, 인위적으로 노력을 해서 대폭 향상시킬 수는 없는 분야이다. 선천적으로 천부적 재능을 타고 나는 측면이 있고, 후천적으로는 학습과 교육훈련을 통해 일정 정도나마 개발시킬 수 있는 여지는 있다.

변희재 추종세력은 그의 이러한 명암을 알고, 가능한 것은 기대와 예상을 하고 가능하지 않은 것은 기대와 요구를 하면 안된다. 왜냐하면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다. 특전사 구호에 ‘안되면 되게 하라’는 취지의 말이 있는 모양인데, 일반인들이 따라하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끝)

[애국뉴스 사설, 2020년 5월 11일]

www.aeguknews.com

골목대장 조원진

우리공화당의 조원진이라는 사람에 대해 논평한다. 본 지면에서는 한 인간의 모든 것을 논평할 수는 없다. 여기에서는 특정개인의 활동 중에서 ‘골목대장’ 측면에 한정해서 논평하고자 한다.

조원진은 자기 추종세력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또는 여기저기에서 집회와 시위를 벌이면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주류언론매체가 완전히 편향된 정치환경에서 그가 나름대로 고군분투 해오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와 추종자들의 활동을 평가해 보았을 때, 후한 점수를 주기는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이다.

조원진과 그 추종세력의 활동상황과 결과를 대중들에게 보다 쉽게 설명하자면, 역시 ‘비유’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쉽게 와닿을 것이다. 그들이 목청 높게 외치는 목소리와 움직임들은 결국 ‘찻잔 속의 태풍’이다. 태풍이 엄청나게 몰려오고, 비바람이 엄청나게 몰아치는 것 같은데, 결국 작은 찻잔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불과한 것이다.

또다른 비유를 들자면, ‘가두리 양식장’이다. 무슨 보수우파 시민이니, 애국진영 국민이니, 하면서 떠들지만, 결국 가두리 양식장 안에서 특정 범위 안의 사람들과의 특정 범위 안의 활동에 불과한 것이다. 전체 국민들을 대상으로 임팩트를 주기에는 한참 모자란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명쾌한 비유를 들자면, 바로 ‘골목대장’이다. 골목 안에서 추종자들한테 폭발적인 지지와 성원을 받는 것 같은데, 결국 ‘골목 안에서만’ 국한된 현상이다. 작은 골목 안에서 대장을 해봤자,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봤을 때 그렇단 말이다.

조원진이 ‘골목대장’에 머무는 것은 그의 한계이기도 하겠지만, 근원적으로는 그 추종자들 또는 지지세력의 한계이다. 골목 안에서의 협소한 환경과 제한된 안목에 갇혀버린 사람들의 ‘수요의 질적 측면’에서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수요(demand)의 질적 수준이 낮고, 질적 요구수준이 낮은 상황에서, 공급(supply)이 신통치 않아도 별다른 문제가 시장(market)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공화당(구 대한애국당)의 현주소와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조원진이 깃발들고 가쁜 숨을 쉬어가며 앞장 서서 뛰어가더라도, 그를 떠받치고 뒷받침하는 인적자원의 수준이 그의 활동을 대폭적으로 지원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하다. 조잡한 인간들과 참모들을 데리고 ‘큰 일’을 도모하기에는 어려울 듯 하다.

삼국지의 유비는 제갈공명이라는 천하의 인재를 얻기 위해 ‘삼고초려’의 일화로 유명하다. 보통의 고만고만한 품질의 자재가 아니라, 천하경영을 의논하고 맡길만한 ‘최고 수준의 인재’를 확보하는데는 남다른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조원진 주위를 둘러봐도 제갈공명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잡다한 돌멩이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데, 미안한 얘기지만 거기서는 답이 보이지 않는다. ‘삼고초려’를 해도 턱없이 부족한 마당에, 조원진 사무실에서는 ‘제갈공명’이 ‘어떤 사무실인가?’ 하고 궁금해서 제 발로 찾아간 적이 있는데, 무식한 자들이 인재를 몰라보고 문전박대 또는 푸대접에 가까운 대우를 한 적도 있다. 역시 무식한 인간들이라 자기 눈높이에서 인재의 가치를 몰라보는 것이다.

대개 ‘괜찮은 사무실’에서는 그 실무진이나 참모들이 자기 능력보다도 더 높은 능력을 가진 외부인을 모시기 위해 노력한다. 자기보다 능력이 높은 사람이 와서 자기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가 모시는 주군의 이익과 대의명분과 큰 그림에 최우선을 두기 때문에, 자기의 사익은 미뤄놓는 것이다.

대개 ‘안되는 사무실’의 특징은 작은 기득권을 가진 편협하고 소심한 자들이 설치는 것이다. 외부에서 인재를 끌어오더라도 자기들의 입지와 위상과 이익이 손상될 가능성이 없는, 자기보다 수준이 낮은 이들을 끌어들이기 마련이다. 자기들보다 수준과 실력이 월등한 사람들이 보이기라도 하면, 온갖 질시와 억지 핑계를 들이대며 교묘하게 내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다반사이다. 한때 조원진의 사무실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

골목대장의 입장에서도 딜레마 또는 아이러니는 있을 것이다. 대X리(머리) 큰 X들은 대개 자기 주장이 강하고, ‘여차하면’ 두목을 상대로 ‘박치기’ 시원하게 박아버리고 조직을 탈퇴하곤 한다. 어떤 부류는 온갖 잡음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렇다고 대X리 큰X들이 없고, 작은 X들만 있어도 문제가 해결되는가? 자잘한 X들의 특징은 아부를 잘하고 눈치를 잘보는 것이다. 골목 안에서만 어깨에 힘주고 인상쓰면서 차력쇼를 할 것 같으면, 피라미들만 데리고 집안잔치해도 충분하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결과’가 없다는 것이다. 국가적 ‘임팩트’가 부족하다.

조원진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골목대장에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현실을 박차고 골목 밖으로 한번 시원하게 달려볼 것인가? 그 똘마니들도 결단해야 한다. 시원한 바깥 세상을 외면하고, 언제까지 우물안 개구리이자 골목 안의 피라미에서 만족하면 살 것인가? 동네축구만 하지 말고, 월드컵에서 한번 뛰어보는 포부를 가져보아야 할 것 아닌가? 

 본 논평은 한 개인과 조직을 폄훼하지는 취지가 아니라, 더 잘해보라는 취지로 씌어진 것이다. 태극기 들고 왔다갔다 하는 애국시민들이 안타까워서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다.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골목대장’에서 적어도 ‘동네대장’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끝)

[애국뉴스 사설, 2020년 5월 10일]

www.aeguknews.com

애국진영 안팎의 잡동사니들은 정리되어야

애국진영 안팎의 잡동사니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른바 보수니, 우파니, 애국세력이니… 하는 세력들 내에서는 여러 가지 부류의 인물들이 활동하거나 왔다갔다 하고 있다. 그 모든 인간군상을 한마디로 획일화 할 수는 없지만, 그 중에서도 몇 가지 부류의 문제성 인물들은 이번 기회에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

문제성 인물들의 대표적 부류는 간첩, 기회주의자, 사쿠라, 염탐꾼, 장사꾼, 사기꾼, 싸구려 등이 있다.

간첩의 폐해와 위험성에 대해서는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기회주의자들은 주로 정치권에서 활개치고 있는데, 여러모로 꼴불견이다. 사쿠라 부류는 크게 소리치고 난리치면서 나무도 뽑아내고 산도 움직일 것처럼 떠드는데, 일정 시간만 지나보면 결국 그 결말이 대단히 허무하게 끝나고 만다.

염탐꾼들이 애국진영 내외를 넘나들면서 이런저런 정보를 빼내가고 있다. 그런 정보들은 애국진영 내부의 결속을 해치고 단합을 방해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한마디로 이간질에 사용되는 것이다. 장사꾼들은 이러저런 대의명분을 말하지만, 사실 그들의 진정한 목적은 단순히 ‘돈벌이’이다. 그래서 집회를 하고 시위를 하고 유튜브 방송을 하고, 이런저런 잡다한 활동을 해도 그 임팩트가 없는 것은 그들의 최고 목적이 돈벌이, 즉 수익창출이기 때문이다.

사기꾼 부류는 그 죄질이 좋지 않다. 장사꾼 부류는 자기들 돈버는 것에 그치지만, 사기꾼 부류들은 기망행위를 통해 재산상의 이익을 취함으로써, 선량한 시민들이 피해를 보고 그들의 순수한 의도가 악의적인 목적에 이용되기 때문이다. 사기꾼들이라는 것들이, 하급 사기꾼들은 이마에 ‘나 사기꾼이요’하고 써있지만, 고급 사기꾼들은 ‘허우대가 멀쩡하다’. 그래서 고급 사기꾼들은 그들이 사기꾼들로 판명되는 과정에서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마지막으로 싸구려 부류도 언급해 본다. 싸구려들은 주로 특정 분야를 선도하는 인물들의 각종 앞서가는 아이디어와 활동들을 카피하는데 집중한다. 자기들이 이런저런 목소리를 내고 각종 활동을 펼치지만, 사실 그 오리저널 컨셉과 전략들은 타인의 것이다. 다음 시대의 트렌드를 미리 내다보는 인물들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가, 자기가 잽싸게 대중들에게 그 아이디어를 떠든다.

대중들은 트렌드 세터(trend setter)로부터 직접적으로 아이디어를 접하는 것에는 일정정도 시차가 발생하기 때문에, 그 빈틈과 공백을 싸구려들이 교묘하고 잽싸게 파고드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싸구려는 싸구려이다. 그들의 활동에 힘이 붙지 않거나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활동과 의견이 대단히 저렴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는 대중들의 각성도 필요한 지점이다.

애국진영은 이번 기회에 문제성 인물들의 부작용을 짚어보고 그 묵은때를 지워내야 한다. 한마디로 대청소가 필요하다. 봄날을 맞이하여 애국진영 안팎을 대청소해야 한다.

간첩, 기회주의자, 사쿠라, 염탐꾼, 장사꾼, 사기꾼, 싸구려 등은 부류들은 애국진영에서 퇴출되어야 한다. 그들이 자기들의 인격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자기발로 물러나겠는가? 세상사의 이치와 우리의 경험칙에 의하면, 그렇지는 못할 것이다. (끝)

[애국뉴스 사설, 2020년 5월 9일]

www.aeguknews.com

애국진영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사설] 애국진영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4.15 총선도 끝나고, 나라와 民心이 여러모로 어지럽다.

자기 입들을 가지고 이리저리 떠든 자들이 많았지만, 그 결과를 보라.

지금껏 해오던 방식으로는 도대체 亂國을 타개할 수가 없어 보인다.

애국진영은 상황인식과 정세분석, 전략수립을 原點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애국뉴스 사설, 2020년 4월 29일(수)]

<어휘>
民心(민심), 자(者), 결과(結果), 亂國(난국), 原點(원점), 사설(社說).

영화 ‘회충’은 폭력혁명을 위한 문화공작인가?

蛔蟲을 연상시키는 어떤 영화가 있다. 요즘 외국에서 유명한 映畫賞을 받았다고 하여 그 영화에 대해 이리저리 떠들고 있다.

일반적으로 貧富 격차나 계층 반목, 계급 갈등에 관한 이슈는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소재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것을 다루는 특정 영화의 방식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것도 흔쾌히 인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것이 世上事의 經驗則임을 상기해 볼 때, 그 영화를 둘러싸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반드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관념적 사치의 발로 때문이 아니라, 장차 대한민국 국민들의 生死를 左右할 수 있는 미래 운명과도 연결될 수 있는 중차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특정 이념적 또는 정치적 세력들은 대한민국을 누군가에게 헌납하기 위해서 血眼인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의 적성세력은 한국을 정복하고 흡수통일 하기 위해서 묘기백출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한 모든 노력들은 국제적인 차원에서는 ‘武力征服’을 위한 전략적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활동으로 나타나고, 국내적인 차원에서는 ‘暴力革命’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영화가 정치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문제는 그러한 영화적 위력, 문화적 파괴력이 단순히 누군가의 ‘자잘한’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는 차원이 아니라, 대규모의 정치적 肅淸과 流血 폭력혁명을 추구하기 위한 숨겨진 장치일 가능성이 있을 때, 그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에 대한 애국진영의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갑자기 길게 말하기 싫어진다. 전후사정을 알만한 사람은 이미 알 것이고, 말해줘도 모를 사람은 결국 모르기 때문일 것인가? 일반백성들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애국진영 핵심세력의 선택지는 둘 중의 하나 밖에 없다. 목숨 걸고 싸우든가, 아니면 海外로 뜨는 것이다. 여기에서 목숨 걸고 싸운다는 말은 단순한 레토릭 차원이 결코 아니다. 生死存亡의 기로이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는 회의감이 들거나 ‘이꼴 저꼴 더러운 꼴 보기 싫다’는 판단이 들 때는? 해외 移民이 답인가? (끝)

[애국뉴스 사설, 2020년 2월 19일]
www.aeguknews.com

[애국뉴스 후원계좌 안내]
신한은행 110-488-558360 (예금주: 이x연)

<어휘>
문화공작(文化工作), 蛔蟲(회충), 映畫賞(영화상), 빈부 격차(貧富 隔差), 계층 반목(階層 反目), 계급 갈등(階級 葛藤), 이슈(issue), 보편(普遍), 世上事(세상사), 經驗則(경험칙), 보이는(visible), 보이지 않는(invisible), 관념적(觀念的), 사치(奢侈), 발로(發露), 生死(생사), 左右(좌우), 미래(未來), 운명(運命), 중차대(重且大), 사안(事案), 헌납(獻納), 血眼(혈안), 적성세력(適性勢力), 묘기백출(妙技百出), 武力征服(무력정복), 暴力革命(폭력혁명), 사전(事前), 정지(整地), 작업(作業), 도구(道具), 주지(主旨), 위력(威力), 파괴력(破壞力), 이익(利益), 肅淸(숙청), 流血(유혈), 성찰(省察), 전후사정(前後事情), 별론(別論), 애국진영(愛國陣營), 핵심세력(核心勢力), 선택지(選擇肢), 해외(海外), 레토릭(rhetoric), 차원(次元), 生死存亡(생사존망), 기로(岐路, 갈림길), 진주(眞珠/珍珠), 회의감(懷疑感), 판단(判斷), 移民(이민), 답(答).

<관련자료>
[애국뉴스] 대한민국 폭력혁명 가능성 (2017. 7. 17.)
[애국뉴스] 과연 대량숙청이 올 것인가? (대량숙청 가능성) (2017. 12. 4.)
[애국뉴스] 북한 핵무기, ICBM 개발 프로그램이 충분히 완료되면? (2017. 8. 1.)

<참고자료>
‘기생충’은 팀워크·열정으로 이룬 성과…아카데미 또 갈 수 있을까?
[시사기획 창] 장르 : 봉준호
[Full] “작품으로 기억되길”..’기생충’, 칸부터 오스카 여정 마무리 @기생충 기자회견